경북 의성 출신의 신봉길 한국외교협회장이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한국외교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
한국외교협회는 약 2천명의 전·현직 외교부 직원으로 구성된 공익 목적의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정부의 외교활동을 측면 지원하고 국제적 우호 관계를 증진한다. 올해 선거로 선출된 신봉길(전 인도 대사) 외교협회장은 '어쩌다' 외교관이 됐다고 말했다. 어떤 절실한 이유나 명분 없이 어떻게 하다 보니 외교관이 되어 있었다는 것. 정말 그럴까. 기자는 그와 잠시 시간여행을 떠나 보았다. 경북 의성의 시골마을서 출발해 2021년 인도 대사로 공직생활을 마무리할 때까지 그의 인생 여정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았다. 사무실에서, 퇴근길 자동차 안에서 차곡차곡 퍼즐 찾기를 마친 뒤 내린 우리의 결론은 '어쩌다'가 아니라 '운명적'으로 외교관이 됐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넓은 대륙을 상상하며 호연지기를 키우고, 조금 더 품격 있는 대한민국의 길을 끊임없이 고민했던 그의 삶이 만든 필연적 결과였다.
아버지를 위한 선택
'어쩌다 외교관'의 길
"사법고시 뜻 못이룬 큰형 대신
외무고시 도전해 40년 공직생활
노신영 총리 장관시절 수행비서
업무 등 모든 면에서 영감 받아
경수로 사업 통해 北 실상 체감
체제 변화 해법은 지속적 교류"
◆인생의 멘토 '아버지'의 바람
그의 고향은 경북 의성 탑리역 부근의 작은 마을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눈뜨면 친구들과 동네 뒷산을 뛰어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그 시절 고향 풍경은 그의 가슴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미루나무 곧게 자란 신작로에 트럭이라도 달리면 흙먼지가 부석부석 날리고, 또래의 아이들은 빡빡머리에 까만 고무신을 신은 채 무엇이 좋은지 연신 웃어대기만 했다. 서로의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 수 있을 만큼 막역한 이웃사촌도 있었다.
그는 4남1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 시절 대다수 부모가 그랬듯 아버지는 자식이 국가고시를 쳐서 안정된 삶을 살기를 바랐다. 머리가 좋았는지 네 명의 아들이 모두 서울대, 여동생은 이화여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자식의 진로는 아버지의 기대와는 사뭇 다른 쪽으로 펼쳐졌다. 신 회장은 "큰형이 서울 법대에 진학했는데, 안타깝게도 사법고시와는 운이 닿지 않았다. 나는 그때 내가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생각에 외무고시를 선택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운명의 40년 외교관 생활과 북한
1978년 제12회 외무고시에 붙어 외교관이 됐다. 군대시절을 제외하고 40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행운이 많았다. 특히 2019년 작고한 노신영 국무총리와의 인연을 빼놓을 수 없다. 노 총리가 외무장관이던 때 그는 수행비서를 맡았다. 외교활동은 물론 여러 면에서 영감이 되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또 일머리 없이 의욕만 앞서 곧잘 실수도 저질렀다. 자신을 대신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야단맞았던 것은 지금까지도 미안한 일화다.
그는 재직시절 중국·일본·인도·미얀마 등 주로 아시아통으로 활약했다. 가장 큰 관심은 북한 쪽에 쏠려 있었다. 북한 핵개발을 중지시키기 위해 북한에 경수로 2기를 제공하는 대북사업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북한을 여섯 번이나 방문했다. 속초에서 배를 타고 신포로 가거나 중국 북경에서 비행기를 타고 평양으로 들어갔다. 이때 북한을 피부로 체감하면서 바람직한 남북관계에 대한 생각을 굳힐 수 있었다. 신 회장은 "폐쇄적인 북한 체제가 지속되면서 주민들만 죽어나가고 있다. 남북한 교류를 통해서 북한체제를 서서히 바꿔 나가는 것을 바람직한 해법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신봉길(오른쪽 둘째) 한국외교협회장이 인도대사로 재직하던 2021년 '한-인도 우호공원' 개장식에서 서욱 국방장관, 인도 군 수뇌부 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
◆한·중·일 협력사무국 '주춧돌'
최근 전 세계 외교지형은 숨 가쁘게 재편되고 있다. 1년 넘게 이어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패권의 신냉전주의 속에서 모든 나라는 각자도생의 치열한 생존 현장에 내던져진 것이다. 이런 복잡한 외교함수 속에서 그가 주목한 것은 한중일 협력 패러다임이다. 동북아의 세 나라가 중요한 파트너로서 관계를 설정하고, 정상회의를 통해 주요 어젠다를 협의하는 것이다. 그는 한중일협력사무국을 만들고 초대 사무총장을 맡았다.
이런 가운데 '한중일 정상회의'는 2019년 중국에서의 회의를 끝으로 코로나와 복잡한 국내외 상황 등을 이유로 잠정 중단됐다. 올해 그 어느 때보다 개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신 회장은 "우리 정부가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는데, 미국은 아메리칸 퍼스트를 강조하며 자국우선주의로 흐르고 있다. 그런 만큼 한미 동맹관계도 중요하지만 중국이라는 세계적 군사대국의 실체를 무시할 수는 없다. 올해는 꽉 막혔던 한일관계도 물꼬가 트인 듯하니 (한중일) 정상회의를 재개해 동북아의 미래지향적 어젠다를 내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각자도생 무한경쟁 속
한중일 협력 패러다임
"中의 군사대국 실체 무시 못해
막혔던 한일관계 물꼬 튼 만큼
동북아 미래지향적 어젠다 필요
인도도 경제·군사적 신흥강국
외교안보 협력 관계 강화해야"
◆인구소멸 해법은 '지방 활성화'
그가 외교관으로 마지막 임기를 마친 곳은 인도다. 2021년 인도 대사로 40년 공직생활을 마무리했다. 인도는 중국을 제치고 올해 세계 1위의 인구대국에 올라서는 등 무섭게 성장하는 신흥강국이다. 인도는 또 미국·중국·러시아에 이어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며, 첫째 혹은 둘째 무기 수입국으로 꼽히기도 한다. 신 회장은 "인도는 우리에게 경제적인 것은 물론 외교안보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나라인 만큼 인도와의 관계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외교통으로 살아온 40년. 전 세계를 안방처럼 드나들던 그는 의외로 '지방'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찾고 있었다. 그는 "인구소멸이 우리나라의 가장 큰 위협으로 떠올랐는데, 지방이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대도시의 콘크리트 문화에 찌들어 살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정부가 정책적으로 배려해 지방에서도 교통과 문화 등이 불편하지 않도록 투자한다면 지방으로 인구가 유입되고, 자연히 인구소멸과 같은 문제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도시생활을 하면 구조적으로 애를 많이 낳을 수 없지만 지방 활성화를 한다면 인구정책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글·사진=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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