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커피 '대박' 이어 이젠 안경…스벅 같은 세계적 브랜드 만들 것"
커피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어 5년 만에 100억 매출을 올린 구미 출신의 백진성 대표. 스타벅스, 맥도날드와 같이 누구나 알만한 세계적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
윤현파트너스<주> 백진성 대표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인생의 주인공이다. 어린 시절 구미의 소문난 갑부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성장했다. 어느 날 아버지 사업이 부도나면서 집안이 하루아침에 풍비박산이 났다. 돈에 대한 아쉬움은 한 번도 느끼지 않았는데, 단돈 천원이 없어 라면조차 먹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얼떨결에 가장이 된 그에게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마저 치매 판정을 받으면서 또 한번 눈물을 삼키게 했다.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을 즈음 승리의 여신이 희미한 손짓을 했다. PC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타고난 명민함과 성실함으로 관계자들에게 인정받아 29세에 단돈 1천만원으로 PC방을 창업했다. 내친김에 커피 프랜차이즈 '커피베이'도 론칭했다. 때마침 국내 원두커피 시장의 성장세와 맞물리면서 사업은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창업 5년 만에 연매출 100억의 '대박'을 냈다.
절망의 끝에서 성공으로 전환한 그의 인생 그래프는 최근 새롭게 변곡점을 맞았다. 커피베이를 새로운 적임자에게 매각하고, 다시 출발점에 선 것이다. 질 좋은 원두를 저렴하게 공급해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았던 것처럼 이번에는 가성비 높은 안경으로 세계의 소비자들을 만나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드러냈다. 스타벅스·맥도날드 같은 세계적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진 백 대표를 만났다.
▶아버님이 구미에서 유명한 의사셨다고요.
"산부인과 의사였어요. 당시 아버지가 '손이 떨어져 나갈 만큼 힘들다'고 했을 정도로 환자가 많고, 병원이 잘됐어요. 아버지는 고생했지만 반대로 자식인 저는 최고로 호사를 누렸지요. 학창 시절에 제가 밖에 나가면 '백원장 아들'이라는 걸로 만사통과였죠."
산부인과 의사로 이름 날린 父親 덕에 풍족한 어린 시절
호텔업 손대시며 IMF 덮쳐 대학 1년 때 집안 풍비박산
전역후 母親 치매 등 막막…전공 살려 PC방 알바 생업
▶ 왜 갑자기 집안이 어려워졌는지요.
"제가 대학교 1학년이 되던 해였어요. 병원을 해서 돈을 많이 번 아버지가 호텔을 인수했는데, IMF가 터지면서 부도가 났어요. 그날로 모든 것이 나락으로 떨어졌어요.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가족도 뿔뿔이 흩어지고. 그때 입 하나 덜자는 심정으로 군대에 자원입대를 했습니다."
▶ 대학교 1학년이면 아직 어린데, 큰 충격이었겠군요.
"네. 그렇지만 충격은 오히려 군대에서 전역하고 더 컸던 것 같아요. 군대에 있을 때는 먹고 자는 것이 해결됐지만 전역 후에는 내가 일해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현실에 대한 공포가 확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어머니마저 치매 판정을 받으면서 더욱 막막했습니다. 제 전공이 컴퓨터공학이었기 때문에 PC방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습니다."
▶ PC방 아르바이트하면서 설움도 많았을 듯하네요.
"일단 정말 잘살다가 완전히 바닥까지 가보니까, 돈에 대한 무서움이 느껴졌어요. 예전에는 돈이 필요할 때 아버지 병원에 가면 마치 현금지급기처럼 돈이 나왔거든요. 돈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었는데, 사회에 나가보니까 돈이 정말 무서운 거구나 느낄 수 있었어요. 돈을 벌어야겠다는 게 인생의 첫 번째 목표가 됐습니다."
▶ 커피베이 프랜차이즈로 해외 진출까지 성공해 화제가 됐는데, 비결은 무엇인가요.
"커피베이는 2009년 준비에 들어가 2011년 본격적으로 가맹점 사업에 들어갔어요. 올 초까지 전국 550개까지 늘어나면서 적잖은 바람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지요. 영어로 'Bay'가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접점을 의미하는 만큼 국내를 뛰어넘어 세계적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커피베이는 질 좋은 원두로 가성비 높은 커피를 공급하고, 매장 운영에 문화적 요소를 담아 차별적 운영을 했어요. 봄이 되면 벚꽃 이벤트를 하거나 벚꽃향 음료를 내놓는 등 고객이 매장에 와서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지요."
▶ 커피베이를 애정으로 키웠는데 매각할 때 아쉬움이 없었나요.
"평소에 저보다 더 잘 운영할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자리를 내놓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다양한 협력 툴이 있는 사업체가 운영함으로써 더 크게 성장시킬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서면서 매각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모든 창업자들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꽃'은 성공적 엑시트입니다. 사회 일부에서 매각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기업을 더 안정적으로 성장시키는 방편으로 이해해주시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 전국적으로 보면 대구경북에서 출발한 프랜차이즈가 많은 배경이 뭘까요.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전국적으로 외부 프랜차이즈가 진입하기 어려운 지역이 두 곳 정도 됩니다. 대구경북과 광주호남지역인데요. 특이하게도 외부 프랜차이즈의 진입장벽이 높은 대신 토종 브랜드들의 장악력이 큽니다. 그런 브랜드의 경우 외부에 진출해서도 생명력을 가지는데요. 지역 소비자들의 높은 충성도를 바탕으로 외부에서도 지속성장이 가능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29세에 명민·성실함 인정받아 1천만원으로 PC방 창업
프랜차이즈 '커피베이'도 론칭…5년 만에 年 매출 100억
최근 매각후 '대구 안경산업 명성 되찾으려' 또다른 도전
▶ PC방, 커피에 이어 새 사업 아이템을 안경으로 정하셨다고요.
"오래전부터 쭉 생각해오던 아이템이었는데, 이번 달 매장을 오픈하고 본격적으로 뛰어듭니다. 한국은 지금 중국산 저가 물량에 밀려 주춤해졌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안경 산업 분야에서 세계 2위였습니다. 그 중심에는 안경 광학분야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대구가 자리 잡고 있고요. 안경산업 분야의 옛 명성을 다시 가져오고 싶어요. 안경을 사용하는 수요가 많고 중요한 데 비해 안경 산업은 구조적으로 선진화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질 좋은 안경을 합리적 가격에 공급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입니다."
▶사업을 하면서 어려운 순간도 많았을 텐데 어떻게 이겨냈는지요.
"모든 기업들이 마찬가지일 텐데 매 순간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직원들이 다 그만두겠다는 적도 있었고, 당장 내일 월급을 줄 수 없어 암울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 상처들이 저를 성장시킨 원동력이 됐습니다.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왜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됐는지 떠올리면서 판단에 대한 기준을 잡았던 것 같습니다. 당장 내일 사업이 끝날 것처럼 어려운 날도 있었는데, 오랫동안 준비를 했고, 이 분야에서는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문제의 본질을 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포기하지 않기를 당부하고 싶어요. 사실 제가 젊었을 때와 다르게 사회가 너무 척박해지고, 어려워졌기에 뭐라고 말하기도 미안할 지경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든 사회에서도 성공하는 사람은 반드시 나옵니다. 저도 포기했다면 지금의 저는 없을 테지요.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면 분명히 전환점이 생길 테니 지금은 준비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했으면 좋겠어요."
글·사진=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김은경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