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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아직 시작되지 않은 재판

2023-10-05

[취재수첩] 아직 시작되지 않은 재판
서민지기자〈정경부〉

3년 전 '구속영장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취재수첩을 쓴 적이 있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에서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어린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등진 고(故) 최숙현(당시 22세) 선수의 핵심 가해자들에 대한 영장실질심사 풍경을 보고 쓴 글이었다.

당시 구속영장 발부 여부가 걸려있던 탓에 저녁 늦은 시간까지 취재진의 열기는 뜨거웠다. 이른 시간부터 피의자가 법원에 출석하기만을 기다리다 두 손이 묶인 채 모습을 드러낸 피의자에게 "혐의를 인정하느냐" 물었던 기억이 난다. 다시 긴 기다림의 시간 끝에 나온 '구속' 결과에 속보를 쓰고 나서야 하루 일과를 간신히 마무리했었다.

전 국민적 공분을 샀던 사건이었던 만큼 언론의 주목은 당연했다. 그 시기 정치권도 '최숙현 선수 사건 재발 방지법' 등 체육계 폭력 근절법안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사안의 엄중함을 더했다.

문제는 전 국민적 관심이 영장실질심사 시기에 너무 집중된다는 점이다. 아직 기소도 되지 않아 재판 일정조차 잡을 수 없을 때였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가리는 결승전보다 본선 출전팀을 가리는 예선전에 모든 이목이 쏠리는 모양새다. '구속'이라는 자극적 단어 때문인지, 인간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고 이슈는 이슈로 덮이는 까닭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작 유·무죄를 가릴 시점엔 사건이 잊히고 만다는 점은 곱씹어봐야 할 것 같다. 국민적 이슈에 관심을 보였던 정치권도 슬그머니 발을 빼기 일쑤다. 최 선수 가해자들이 감방살이를 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래서 그들이 어떤 확정형을 받았는지에 대해선 모르는 사람이 허다한 이유다.

3년 전 일이 갑작스럽게 떠오른 건 최근 영장실질심사에서 '기각' 결과를 받아 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보면서다. 영장 기각에 대한 여야 반응은 명확히 갈렸다. 여당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아연실색하며 허둥지둥한 모습이었다. 반면 야당은 의기양양하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반격에 나섰다.

우리 헌법은 피의자(피고인)의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보장한다. 이를 알고 있다면 여당도 야당도 격렬한 반응을 보일 이유가 전혀 없다. 여당 입장에서 '하필'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 나온 결과로 인해 요동칠 추석 민심이 걱정됐다면, 그 이전부터 구속 영장 발부 여부는 예선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었다.

야당 역시 '영장 기각'을 대대적인 반격의 기회로만 삼기엔 미래가 너무 불확실하다. 영장기각이 '무죄'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재판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서민지기자〈정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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