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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특집] 응급실 뺑뺑이·소아과 오픈런…필수의료체계 붕괴부터 막아라

2023-10-31

[의료 특집] 응급실 뺑뺑이·소아과 오픈런…필수의료체계 붕괴부터 막아라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대구 한 아동병원에서 만난 최모(36)씨는 웃지 못할 씁쓸한 현실을 털어 놓았다. 지난 주말 갑자기 열이 오른 6살 아이를 안고 밤새 마음을 졸인 김씨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새벽 6시 일어나 소아과 오픈 대기줄을 서는 것이었다. 최씨는 아이가 진료실에 들어갈 때까지 번호표 뽑기→접수→현장 대기까지 총 3단계를 거쳐야 했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7시30분부터 번호표를 배부하고 8시30분부터 접수가 시작된다. 만약 접수할 때 현장에 없으면 순번은 그냥 넘어 간다"며 "요즘은 아빠가 출근 전 번호표를 뽑고 엄마가 아이를 깨워 병원에 오는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달성군 한 소아과 역시 아침마다 10~20여명 대기줄은 일상이다. 수성구 한 소아과는 현장 접수 없이 '똑닥(실시간 병원 접수·예약 서비스)' 앱을 통해서만 진료 예약을 받는다. 수성구 황금동에 사는 김모씨는 "매달 이용료를 내는 유료 앱인데도 아이가 아프면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된다. 진료비가 아닌 접수비가 또 들어가는 셈"이라며 "야속한 마음이 들지만 매일 오픈 1~2시간 전부터 대기하는 분들 안내할 인력 등을 고려하면 한편으로는 이해도 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의료계에서는 소위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로 비유하는 필수의료 붕괴 현상을 먼저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아과, 산부인과, 외과 등 필수의료 과의 공백을 해소하지 않은 채 의대 정원만을 늘린다면 여전히 새로 배출되는 의사 대다수가 피부·미용으로 빠질 것이라는 우려다. 필수의료는 내과와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생명과 직결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의료를 말한다. 피부과와 성형외과, 안과 등 몇 개 과가 인기있는 것과 달리 외과와 흉부외과, 소아청소년과, 소아외과, 산부인과(특히 산과) 등은 전공의 지원율이 낮고 이미 전문의를 하는 사람들도 다른 과목으로 빠지려는 기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미용·성형이 주가 되는 과에 비해 임금이 매우 낮고 기술적으로 어려운데다 최근 의사에 대한 민사·형사처벌이 가중하며 근무환경 또한 나빠졌기 때문이다.

■ 외과 등 필수의료과 기피 가속
2020년 전공의 지원율 63~89% 그쳐
열악한 처우·의료사고 리스크 큰 탓

■ 지역 간 의료 불균형 해결책은

'공공임상교수제도'는 한계 봉착
복지부 '의사인력뱅크' 설치 추진
쉬는 의사 인력난 병원에 매칭

■ 정부, 우수인력 확보 혁신전략
국립대병원 필수의료 중추로 육성
비수도권 수련병원 비용 대폭지원

◆수익성 낮고 위험 큰 필수의료

의료정책연구원이 지난 2월 내놓은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전문의 수는 연평균 3.3% 증가했지만 외과와 흉부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1.2~2.2% 늘었다. 또한 2017년 기준 전체 전공의 충원율이 96%였는데 흉부외과는 54%에 그쳤다. 2020년에도 외과와 흉부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의 전공의 지원율은 63~89%에 그쳤다. 이렇게 필수의료과를 기피하는 이유에 대해 일선 의사들은 "당직 또는 과도한 근무시간으로 인해 직업 만족도와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며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의료수가가 낮아 수익성이 낮고 위험부담이 크다"고 답했다. 이어 "의료기관을 경영하는 측면에서도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높은 의료사고 위험에도의사들에 대한 법적 보호 조치가 부재하다"고 답했다.

◆의료불균형 해소하려던 '공공임상교수제도' 존폐위기

의사 충원이 어려운 지역의 필수 의료 인력 수급을 위해 지난해부터 시범 도입하고 있는 국립대병원 공공임상교수제도가 근무 환경과 처우 등의 문제로 의사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존폐 위기에 처했다.

당시 정부는 환자의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역 간 의료 불균형 해소를 위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채용한 의사는 16%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의대 정원 확대 논란 속에 최근 정부가 지방 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의사 수를 늘려 지역·필수 의료 붕괴 위기에 대응하기로 한 가운데 제대로 된 정책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 이 제도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에 따르면 열악한 지역 공공보건의료 대책으로 국립대병원 소속 정규의사로 의료원과 적십자병원 등 지방 의료기관의 필수 의료 등을 담당하는 공공임상교수제도를 지난해 4월 도입했다. 총 10개 국립대병원이 150명의 공공임상교수를 모집해 전국 41개 지방의료원(35개)과 적십자병원(6개)에 배치하는 것이다. 임용 기간은 3년이며 재임용할 수 있다.

하지만 지방의료원에 순환 근무해야 하는 데다 여건보다 임금이 적다는 이유로 기피해 지난달 말 기준 총 24명(16%)만 채용하는 데 그쳤다. 경북대병원은 대구·경북 지역 7개 의료원·적십자병원의 모집 인원 총 15명 중 울진군의료원 응급의학과(1명), 영주적십자병원 신경외과(1명) 등 2명만 채용했다. 전북대병원은 군산의료원 등 3개 의료원 총 19명 중 3명, 충북대병원은 청주의료원 등 2개 의료원 15명 중 1명만 채용했다. 경상국립대병원(모집 인원 14명), 부산대병원(7명), 전남대병원(15명), 제주대병원(15명) 등 4개 국립대병원은 채용 인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국립대병원 필수의료 강화

전국 국립대 중심 필수의료도 강화된다. 계획은 의사 수를 늘려 필수의료 분야 유입을 유도하고, 국립대병원 등 거점기관을 필수의료 중추로 삼아 지역 병의원과 협력체계를 강화하겠단 것이다. 그동안 공공기관으로 분류되는 국립대병원은 민간·사립대 병원과 보수 차이가 벌어지면서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이에 정부는 총 인건비와 정원 관리 등 공공기관 규제를 풀어줄 복안이다. 국립대병원에 중환자실과 응급실 병상·인력 확보를 위한 지원금을 주고, 외상이나 분만 등 사회적 필요도가 높으나 수익성이 낮은 필수의료센터에 대한 보상 강화도 지속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현재 만성질환 위주인 1차 의료기관(동네 의원 등) 지원을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외과 등 필수의료 분야 전반으로 늘린다. 우수한 지역 종합병원(2차 병원)을 전국 70개 중진료권별로 육성해 필수의료 수술·응급 공백을 해소하고 환자의 상급병원 쏠림을 방지할 계획이다. 진료 정보 교류, 의뢰·회송 지원 강화를 바탕으로 컨트롤타워인 국립대병원과 지역 병의원이 긴밀하게 협력하도록 하고, 의료 질 향상을 도모하는 '지역 필수의료 네트워크 시범사업'도 신설한다.

필수의료 공백을 해소하고, 초고령사회 전환에 대비할 수 있도록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한다. 현재 한국 의사 수는 OECD 최하위 수준이다. 특히 지역에서 성장한 학생이 의대에 입학해 해당 지역 의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역인재 선발을 지속 확대할 예정이다.

전공의들의 지역·필수 의료 분야를 경험 확대를 위해 비수도권 수련병원에 전체 전공의 정원의 50%를 의무 배정한다. 이때 필수진료과 수련비용은 국가에서 지원한다. 또, 지방병원 간호사 채용을 활성화하고, 중환자실 근무간호사 배치 확대 지원 등 필수의료 분야 간호인력 근무 환경을 개선해 지역 유입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필수의료 의사가 안정적으로 진료할 수 있도록 의료분쟁이 생길 시 발생하는 환자 피해구제 및 의료인 법적 부담도 낮춰준다. 필수의료 종사자의 민·형사상 부담도 완화한다. 기존에는 어쩔 수 없는 분만 의료 사고 보상에 대해 국가가 70% 부담을 해줬는데, 이제 국가 부담을 100%로 늘린다.

국립대병원 소관 부처는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바뀐다. 국립대병원을 필수의료 중추(진료), 보건의료 R&D 혁신(연구), 인력 양성·공급 원천(교육) 등 의료 혁신 거점으로 획기적으로 육성하기 위함이다. 국립대병원 간 연계·협력을 통해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국립대병원 혁신 네트워크'도 구축할 예정이다

◆의사인력뱅크, 대안 될까

지역 필수 의료 공백을 메우고자 정부가 대체인력이 필요한 의료기관에 의사를 매칭해주는 고용 지원체계 구축에 적극 나선다. 마치 은행처럼 의사 자원을 한데 모아 관리하다가 필요한 때에, 필요한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의사와 병원을 연결해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공공병원 등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가칭 '의사인력뱅크'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는 정부가 지난 19일 발표한 필수 의료 혁신전략 중 하나다. 인력뱅크는 거점 의료 기관인 국립대병원에 설치될 예정이다. 국립대병원은 인력뱅크를 통해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의사나 다시 일할 계획이 있는 은퇴 의사, 또 개원의 가운데 공공병원 등에서 협진할 수 있는 의사들의 명단을 관리하고, 필요한 곳에 고용을 지원한다. 예를 들어 육아 휴직으로 일을 쉬는 의사들 가운데 하루 중 잠깐이나마 진료를 볼 수 있는 의사가 있다면 인력이 부족한 병원에 연결해주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일·가정 양립 등의 이유로 잠시 쉬는 의사 중에 파트타임으로 진료하려는 수요도 있고, 일을 쉬는 시니어 의사들도 있다"면서 "현재는 정확한 현황을 모두 알기 어렵기 때문에 의료인 네트워크를 만들어 필요한 분야로 안내해드리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관계자도 "의사들이 휴직 사실을 직접 신고하지 않는 이상 현재 일을 하는지 여부를 담은 리스트를 취합하거나 관리하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인력뱅크는 현재 의협에서 추진 중인 시니어 의사 인력의 필수 의료 지원 방안도 포섭할 것으로 보인다. 의협은 올해 1월 공공 보건의료기관의 진료체계 안정을 위해 국립중앙의료원과 업무협약을 하고, 6월에는 시니어 의사-지역공공의료기관 매칭 사업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렸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협이 시니어 의사들의 공공병원 채용 지원을 하고 있는데, 인력뱅크에서 시니어 의사뿐만 아니라 근무 여건이 되는 분들을 모아서 연결하려고 한다"며 "인력의 수요·공급을 맞춘다는 측면에서 이점이 있을 거 같아 여러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장에서 (인력뱅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델링 과정에서 계속 살펴볼 계획"이라며 "의사 단체들과 논의를 계속하겠다"고 덧붙였다.

강승규기자 ka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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