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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지금 안아 주세요

2023-12-04

[문화산책] 지금 안아 주세요
김혜진작가·이음발달지원센터 대표

우리는 종종 '언제 밥 한번 먹자' '나중에 한번 보자'라는 다음을 약속하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이 말인즉슨 다양한 이유로 지금 당장은 밥을 먹거나, 만나는 일이 어렵다는 말이다.

어른들이 다음을 약속하는 '언제 한번' '나중에'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경계선지능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는 사회성 언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절대 인사를 하지 않았다. 기질적으로 쑥스러움이 많기도 하지만, 의사소통의 시작을 유난히 어려워했기 때문이다. 수업이 시작될 때 먼저 인사하기로 약속을 했고, 아이가 교실로 들어왔다. 인사할 타이밍이다. 하지만 교실은 적막이 흘렀다. 몇 분이 흘렀을까?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지금, 연습한 대로 인사하면 돼." 그러나 아이는 "다음에 할게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패트릭 맥도넬의 '지금 안아 주세요'라는 그림책을 꺼내 아이와 읽었다. 사랑이 넘치는 고양이 줄스는 온 세상을 다 안아 주고 싶었다. 나비와 미나리꽃과 회색 다람쥐를 안아 주었다. 공원에 만나는 모든 새도 안아 주었다. 배를 타고 크고 파란 고래도 안아 주었다. 그리고 코끼리, 침팬지, 기린, 하마, 호랑이, 북극곰까지….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자기 친구 두지를 꼭 안아 주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문장을 아이와 소리 내어 한 번, 두 번, 세 번 읽었다.

"이제 모두 서로를 안아 주세요! 그게 바로 우리가 할 일이랍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친구부터 시작하세요. 지금 안아 주세요!"

책을 다 읽고 아이와 '나중'이 아닌 '지금' 할 수 있는 표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인사하기가 어렵다면 좀 더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는 표현은 무엇일지 물음을 던지며 수업을 마쳤다. 아이는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고 씽긋 눈웃음을 지으며 교실을 나갔다.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표현으로 나에게 마음을 전해준 것이다. 아이의 마음이 참 고마웠다. 앞으로 아이가 자신이 속한 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통해 적절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워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배워가는 과정에서 아이가 지금 할 수 있는 표현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연말. '나중에 밥 한번 먹자'라는 말 대신 지금 문자 한 통, 전화 한 통 해 보는 건 어떨까? 지금 할 수 있는 표현으로 마음을 전해보자. 서로에게 조금 더 따뜻한 겨울이 될 것이다. 김혜진<작가·이음발달지원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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