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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칼럼] 할머니들에게 꽃 한 송이 선물하는 아파트는 없을까

2024-06-19

[유영철 칼럼] 할머니들에게 꽃 한 송이 선물하는 아파트는 없을까
언론학 박사

나는 어릴 때부터 꽃을 좋아했다. 꽃 가꾸기도 좋아했다. 훗날 초등교장이 된 바로 위의 누나도 그러했다. 좋은 꽃이 보이면 탐도 냈다. 아는 집이면 얻어와 심기도 했다. 마당 화단에 꽃씨도 뿌리고 가꾸었고 꺾꽂이를 하면서 번식도 시켰다. 문 열린 어느 집에 수국이 참 예쁘게 피었길래 주인에게 말하고 한 가지 얻어서 모래 담긴 물병에 꽂아 뿌리를 내기도 했다. 60여 년 전 초등 다닐 때 학교에 꽃모종을 심어놓으면 그날 오후 누나와 가서 몇 포기 몰래 뽑아 집에 심기도 했다. 때로 경비에게 들키기도 했다. 중3 여름방학 때 학교 도서관에 나와 공부하다가 온실에 파종해 놓은 아스파라거스를 보았다. 하늘거리는 파란 잎이 너무 좋아서 친구와 같이 한 움큼 뽑았다. 교문을 나서다가 수위에게 들켰다. 그전에도 들킨 적이 있었다. 나이 많은 수위가 "또 가져가느냐? 학교 건데 가져가지 말아라!"며 타이르자 그때 지나던 당직 교사(나중에 보니 고교선생이었다.)가 듣더니만 "야들 전과자들이네!" 하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그런 게 전과자구나 싶어서 그 짓을 하지 않았다. 그 후 동일계 고교에 진학해 온실반에 들어갔다. 내가 직접 온실에서 화초를 키우고 다양한 방법으로 번식도 시키고 번식한 꽃을 실컷 화분에 담아 하교해도 됐다.

내가 영남일보 기자 한 사실을 잘 아는 학교 동기 선후배들은 신문에 대해 언론에 대해 나에게 묻곤 한다. 퇴직한 지 20년이 다 돼 가지만 지금도 기사 부탁도 한다. 대개 내 선에서 판단하고 기사가 안 된다며 자른다. 하지만 어떤 경우 신문사 후배에게 얘기한다. 지난달 말쯤 초등 동기로부터 '자기가 사는 아파트에 삭막한 일이 생겼다'는 전화가 왔다. "80대 입주민이 아파트 화단에 심은 꽃 한 포기를 빼내 갔다고 관리실이 경찰도 부르고 CCTV로 찾아내 벌금도 내라 하고 난리다"면서 영남일보 기자한테 얘기 좀 해 달라고 했다. 나는 진식 사회부장한테 요지와 상대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그게 지난 6월11일자 이승엽 기자가 첫 보도한 '"꽃 꺾었으니 35만원 물어내"…80대 입주민 신고한 매정한 아파트관리사무소'라는 기사였다. 이내 전국 뉴스가 됐다. 40여 개 언론사가 잇따라 보도했다. 영남일보도 '… 검찰, 기소유예 처분'(6월12일자), '… 관용이 사라진 사회'(6월14일자)라는 속보를 전했다. '어느 아파트냐'며 비난하는 댓글 또한 쏟아졌다.

아파트 관리실과 주민대표는 심은 꽃이 없어지자 화가 나서 색출을 궁리한 모양이다. 경찰도 불렀다. 외부인도 있고 해서 벌금도 모두 같이 물리고 해버렸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했다면 80~90대 할머니들에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한편으론 입주민을 위하는 개념도 없는 데다 그것도 벼슬인 양 갑질하는 예도 많다고 한다. 자기보다 못하거나 약한, 경비원 등에게 무시하는 일도 많다고 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누구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지 무지하거나 간과하는 그 비도덕성이 고령화사회 노인들이 태반인 오래된 아파트에서 이 같은 '법대로 처벌하려는' 불관용의 난센스를 야기했는지도 모른다. 80대 할머니에게 '무혐의'가 아닌 '기소유예'로, 곧이곧대로 처분한 검사도 생각할 점이다. 그 할머니가 잘못했다는 것은 물론 분명하다. 하지만 세상이 왜 이리각박해졌나. 불손해졌나. 할머니가 뽑은 아름다운 노란꽃의 이름은 수선화로 알려졌다. 입주 할머니와 동네 친구분들이 꽃을 좋아하는 것을 할머니 편에서 파악하고 경비로 꽃화분을 사서 원하는 할머니에게 하나씩 선물하는 행사를 하는 아파트는 없을까.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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