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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성] 조선시대 폭우

2024-07-15

'지례와 군위에 천둥과 바람이 크게 일고 비와 우박이 섞여 내렸다. 내린 곳마다 큰 나무가 넘어지고 곡식이 쓰러졌다.'(선조 33년 7월), '삼척에서 광풍·폭우로 인가가 표몰하고 익사자가 104인이나 되다.'(영조 20년 8월), '평안북도 희천군에 폭우가 쏟아져 강물이 범람해 남녀 374명이 수재를 당해 죽었으며, 576호의 집이 떠내려갔거나 무너졌다.'(고종 36년 8월)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유난히 '여름철 집중 호우'에 관한 기록이 많음을 알 수 있다. 별다른 수재 예방책이 없던, 오로지 하늘만 쳐다보고 살아야 했던 그땐 장마·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기습 폭우로 인한 침수 때 옥에 갇힌 죄수들은 꼼짝없이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끔찍한 피해 상황은 임금에게 깨알같이 보고됐다. 현군(賢君)은 천재지변을 자기 탓으로 여기며 백성의 고충을 헤아리기도 했다. 폭우에 관한 옛 기록을 접하다 보면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 못해 시려온다.

장마철을 맞아 '호우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되는 일이 잦아졌다. 이 문자는 '1시간 강수량이 50㎜ 이상'이면서 '3시간 강수량이 90㎜ 이상'이면 발송된다.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될 수준의 호우는 776차례(152일) 있었다. 대부분 장마·태풍 기간인 7∼9월 집중됐다. 지난주 대구경북을 비롯한 전국에 '물폭탄'이 쏟아져 인·물적 피해가 속출했다. 가히 '폭우의 시대'다.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는다. 장마철 으레 내리는 비로 여겼다간 큰코다친다. 이 같은 극단적 폭우는 전 지구적 기후변화에서 비롯된다. 철통같은 대비만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이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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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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