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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 재능은 없지만 좋아합니다

2024-07-25

나의 피아노 배우기 시작
음악 재능 없음을 깨닫다
악보 없이는 연주 못해
그래도 피아노가 좋아
성실함도 하나의 재능

[더 나은 세상] 재능은 없지만 좋아합니다
정혜진 변호사

"요즘도 피아노 쳐?"

몇 년 만에 만난 친구가 안부 인사로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친구는 예상한 질문을 또 한다. "한 10년 되지 않았어? 이젠 꽤 잘 치겠네?" 어렸을 때 배우고 싶었지만 배우지 못한 피아노를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시작했다. 중고 피아노를 사고 매달 레슨비를 낼 경제적 여유가 생겼고, 시간도 낼 수 있었다. 10년 전 동네 피아노 학원에 등록한 이후로 지금까지 주 1회 1시간 레슨을 쉬어본 적은 거의 없다. 지난해 손가락 관절에 염증이 생겨 생수 병뚜껑을 열지도 못할 만큼 손가락에 힘을 줄 수 없었을 때 의사의 조언에 따라 한 달 정도 쉰 적을 제외하면 말이다. 바빠서 연습을 거의 못한 경우에도 레슨은 빠지지 않았다. 여행을 갈 때는 요일을 조정해서라도 학원에 갔다. 그러니 내가 피아노 배우는 사실을 아는 지인들은 대부분 저 친구처럼 묻는다.

그런데 피아노를 배우면서 명확하게 알았다. 난 정말 피아노에, 나아가 음악에 재능이 전혀 없다는 걸. 악보는 잘 읽지만(이건 배움과 노력의 영역이다), 악보가 없으면 한 소절도 못 친다. 피아노를 어느 정도 배우면 누구나 어떤 노래라도 대충 반주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그런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나는 음계를 알고 조성을 알고 코드 진행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는데도 코드 적힌 악보가 없으면 피아노 건반을 누르질 못한다.

그뿐이랴? 당최 외워서 연주할 수 있는 곡이 단 한 곡도 없다. 물론 반복해서 연습하면 저절로 외워지긴 하고, 그동안 많은 곡을 외워봤다. 그런데 새로운 곡을 연습하기 시작하면서 그전에 친 곡을 하루 이틀 안치면 손가락에서 모래가 술술 빠지듯 머릿속에서 그 곡이 빠져나간다. 어찌나 쉽게 사라지는지, 그 곡이 무슨 조인지, 몇 분의 몇 박자인지 그런 기본적인 것마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외우고 있는 곡은 있어도 '언제나' 외우고 있는 곡은 없다. 흔히들 몸으로 배운 건 잘 안 잊어버린다고 하지 않던가. 자전거를 한번 배워두면 몸이 기억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자전거 타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듯 피아노도 일단 건반 앞에 앉아서 첫 음을 떠올리면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기억이 난다고 하던데, 안타깝게도 내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그래도 자전거 타는 건 안 잊어버렸긴 하다).

재미있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피아노를 좋아하며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열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잔잔하게 꾸준하게. 내가 음악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이 좀 실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아예 당당하게 말한다. "있잖아, 피아노 치는 내게 세 가지 놀라운 점이 있어. 첫째, 정말 재능이 없다." 이 대목에서 친구들은 대개 '풋'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말한다. "두 번째는 알겠다. 그래도 꾸준히 한다." "맞아! 그럼 세 번째는 뭔지 알아? 재능이 없어도 즐거울 수 있다."

어릴 때 선망하던 걸 늦게라도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되어서 좋고,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더 감탄하며 감상할 수 있어서 좋다.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이 띵까띵까 쳐대는 시끄러운 피아노 소리마저도 음악을 알아가는 아이들의 활기찬 소리로 느껴져 좋다.

내 말을 들은 친구가 총평을 했다. "성실함도 재능이래." 그런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재능은 없지만 좋아하니까. 정혜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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