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의 삶을 산 학자 송두율
물대포에 쓰러진 농민 백남기
'동맑실 조신한 이장의 운멩' 등
실존인물이 주인공인 작품 여덟
농업·농민 소설을 주로 써 온 한상준 작가는 그의 신작 '미완의 귀향'에서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농민 백남기,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산 반체제 학자 송두율 등 실존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소환해 그들의 삶을 묵직하게 그려낸다. <게티이미지뱅크> |
농업·농민 소설을 주로 써 온 한상준 작가의 소설집이다.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는 여덟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각각의 인물들을 소환해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그들의 삶을 진중하게 그려낸다.
작가는 서문에서 "내가 만났던 혹은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가슴에 힘껏 그리고 가득 품고 있던 사람들에 관해 쓴 작품들을 묶었다"고 밝힌다. 질박하고 강건했던 농민 백남기를 비롯해 참된 일꾼이자 견고한 진보주의자 김일순,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산 반체제 학자 송두율, 교육현장에 몸담았던 아홉 도반, 가슴에 아픈 상처로 남아 있는 제자이자 어디선가 아이들의 꿈을 키우고 있는 교사, 시를 못 썼지만 시인의 삶을 살다 간 고(故) 박배엽 등이 바로 그들이다.
한상준 지음/나무와숲/352쪽/1만8천원 |
표제작 '미완의 귀향'에서는 2003~2004년 국가보안법 논쟁의 중심에 서며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재독 학자 송두율 교수가 주인공으로 소환된다. 37년 만의 귀국과 구속, 재판과 강제 출국, 그리고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은퇴 후 포르투갈 알가베로 이주한 송 교수의 삶을 언론사 기자의 눈을 통해 보여준다. 이념적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 한국사회의 민낯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특히 분단된 조국에서 학자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어떻게 억압당하고 삶을 구속하는지를 절제된 언어로 담아낸다. 작가는 송 교수가 귀국하지 않는 한, 또한 한반도가 평화 체제를 공고히 하지 못하는 한, 이 작품은 아직도 미완(未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 다른 작품 '농민'은 2015년 민중총궐기대회에 참가했다가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의 애환을 1인칭 시점으로 쓴 소설이다. 농민 백남기의 소탈하면서도 농업과 농촌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동안 농업·농민 소설을 쓰며 문제 인식을 넓혀온 작가의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엿볼 수 있다.
'동맑실 조신한(曺迅翰) 이장의 운멩'은 오직 대화로만 엮은 작품이다. 찰지고 흐드러진 남도 사투리가 맛깔나게 펼쳐진다. 2020년 수해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구례읍에서 축산업을 하며 '섬진강수해참사피해자구례군비상대책위원회' 활동을 한 김일순 농민활동가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이 땅의 원형적인 삶을 지니고 사는 농민들의 애환이 진득하게 드러난다.
작가의 제자와 절친한 벗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도 만나 볼 수 있다. '서미림 선생'은 작가가 한때 가르쳤던 제자의 이야기다. 폭력과 폭압으로 일상화된 학교로부터 내몰려 결국 학교를 떠나야 했던 제자가 나중에 교사가 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쓴 작품이다. "아름답고 아름드리 큰 나무 그늘 아래에서 그의 가르침을 받은 아이들이 참으로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겨있다. '오래된 잉태'는 작가의 벗이면서 시인이자 문화운동가였던 고(故) 박배엽이 폐암에 걸리자 그의 쾌유를 빌며 쓴 소설이다.
송언 작가는 추천사에서 "한상준의 소설은 독자를 전율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당기는 기묘한 힘이 있다. 그가 펼쳐 보이는 새벽 강(江)의 윤슬 같은 이야기 세계에 영혼을 흠뻑 빠져 보길 바란다"고 밝힌다.
1955년 고창에서 태어난 한상준 작가는 김제 금구면 소재의 고등공민학교에서 소작인의 자녀를 가르쳤다. 교육 운동에 발을 내디뎠다가 해직되기도 했다. 1994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에 '해리댁의 망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1986, 학교'를 비롯해 소설집 '오래된 잉태' '강진만' '푸른농약사는 푸르다' 등을 펴냈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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