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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위키백과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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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파멸할지언정, 패배하진 않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명문장이다. 간결하고 절제된 표현이지만, 헤밍웨이의 모험적인 삶을 엿볼 수 있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인 그도 여느 소설가 못지않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갔다.
1899년 태어난 헤밍웨이는 일리노이주 오크 파크에서 부유한 유년기를 보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캔자스시티 스타'에서 6개월간 기자로 일했다. 이때 그가 근무한 언론사의 편집 방향은 헤밍웨이 문체의 기초가 됐다. "짧은 문장을 써라. 첫 단락은 짧게 써라." 헤밍웨이는 복잡한 문장 구조를 지양했는데, 실제 그가 쓴 전체 문장의 약 70%가 종속절이 없는 단문 형태로 이뤄져 있다.
이후 이탈리아 군대에 입대했는데, 심한 부상을 입게 된다. 이때 겪은 전쟁 경험은 그의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의 기초가 된다. 그는 총 4번의 결혼을 했는데, 1921년 그중 첫 번째 아내인 해들리 리처드슨과 결혼했다. 부부는 헤밍웨이가 해외 특파원으로 근무한 곳인 파리로 이사 갔다. 헤밍웨이는 소위 '잃어버린 세대'라고 불리는 1920년대 근대주의적 예술가들의 영향을 받고 1926년 첫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혼란스러운 시기를 배경으로 방황하는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그렸다.
2차 세계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 작전과 파리 해방 전투에 기자로 참여했다. 1952년엔 대표작 '노인과 바다'를 출판하고 2년 뒤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당시 위원회는 '노인과 바다에서 보여준 서사 기술의 완벽함과 현대적인 스타일을 구사한 공적'을 수상 사유로 삼았다.
이후 아프리카의 사파리로 떠난 그는 여행 중 두 차례의 비행기 사고를 당해 남은 생 대부분을 병과 함께 지냈다. "오랫동안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렸지만 공포에서 벗어나니 편안함을 느낀다"는 메모를 남기고 61세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 주말섹션과 연극을 담당하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