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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타워] 벌초, 버려진 무덤, 소멸…

2024-09-12

[영남타워] 벌초, 버려진 무덤, 소멸…
백승운 문화부장

지난주 벌초를 다녀왔다. 필자에게 벌초는 단순히 풀 베러 가는 일이 아니다. 몇 마디 나누는 안부가 전부이지만 먼 피붙이들을 1년에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서다. 유년을 보낸 고향이 그 자리에 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피붙이들의 얼굴도 고향마을의 기억도 잊을 듯해서다. 벌초를 해마다 빠지지 않는 이유다.

올해는 긴 장마로 풀들이 더욱 무성하다. 망자의 머리 위에 기초를 세우고 뿌리 박은 풀들은 유난히 성가시다. 우거진 풀숲에 잔뜩 웅크린 무덤들이 쓸쓸하고 적막하다.

코흘리개였던 조카는 오십의 중년이 되어 예초기 칼날을 돌렸다. 큰집 형님은 쇠약해진 몸을 힘겹게 일으키며 낫을 들었다.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 사이로 큰 형님의 힘에 겨운 신음이 툭툭 새어 나왔다. 형님들과 조카들은 묵묵히 풀을 깎고 쓸어내며 그렇게 망자와 대면했다.

중간중간 이동하는 사이 곳곳에 버려진 무덤이 여럿이다. 손길이 닿지 않은 무덤은 음산했다. 풀은 우거져 덩굴을 이루었고, 나무의 굵은 뿌리가 흙을 뚫고 허옇게 드러나 있었다. 멧돼지가 파헤친 흔적은 동굴처럼 을씨년스러웠다. 본봉의 흙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버려진 무덤들은 깎이고 쓸려 내려가 지워지고 있었다.

마을 어귀 정자는 버려진 무덤처럼 적막했다. 늙고 노쇠한 어르신들이 기둥에 기댄 채 축 늘어졌다. 낡고 오래된 정자는 쇠약한 몸들을 힘겹게 받아내고 있었다.

인사를 건네자 "누구냐?"고 묻는다. 이름을 말했지만 알아보시지 못한다. '누구누구의 막내아들' 혹은 '누구누구의 동생'이라고 말하고 나서야 "왔나"라며 반긴다. 분명 몇 해전에는 이름만 말해도 알아보셨던 어르신들이다. 그들의 기억은 필자가 고향을 떠난 횟수만큼 흐릿해져 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정자 위에 빈자리는 해가 갈수록 듬성하다. 올해는 채 10명을 넘지 못했다. 안부를 이어가면서 어르신들은 몸을 휘청거렸다. 들숨은 몸속으로 깊이 들어오지 못해 쇠 소리를 냈다. 날숨은 입 밖에서 맴돌았다.

칠순을 바라보는 마을 이장은 "이제 10가구 남짓 살고 있다"고 했다. "대부분이 80대를 훌쩍 넘겼다"고 했다. "길고양이가 사람보다 더 많다"며 농을 섞었다. 그러면서 이장은 "10년 안에…"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어지지 못한 말은 비극처럼 들렸다. 그것은 '10년 안에 이 마을에는 사람이 살지 않을 것'이라는 사형선고처럼 들렸다. 존재의 원천이 사라지는 풍경, 그 모습을 상상할 때마다 무척이나 낯설었다.

인구소멸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농촌은 더욱 심각하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전망치가 나올 때마다 섬뜩하다. 지난해 전체 시·군·구 228곳 중 52%(118곳)가 '소멸위험지역'이라고 한다. 2047년에는 인구 감소로 전체 시·군·구의 69%(157곳)가 '소멸 고위험단계'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년에 한 번, 벌초를 갈 때마다 통계의 현실과 마주할 때면 내심 걱정이다.

무성한 풀은 언제가 무덤을 완전히 덮어버릴 것이고, 정자 위 빈자리는 갈수록 늘 것이다. 그렇게 고향은 소멸 되고 기억과 추억과 정서의 원천은 지워질 것이다. 음복한 술 한잔이 유난히 쓰다.
백승운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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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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