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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윤 칼럼] 밴댕이 小考

2024-09-20

[이재윤 칼럼] 밴댕이 小考
이재윤 논설위원

인천이나 강화도에는 밴댕이 회무침 거리, 밴댕이 마을이 있다. 이곳에선 사시사철 밴댕이를 맛본다. 제철에는 생물로, 철 지나면 냉동 회를 해동해 무쳐 먹는다. 그런데 이곳 밴댕이는 밴댕이가 아니다. '반지'라 부르는 물고기다. 둘은 완전히 다른 종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다. 진짜 밴댕이 요리는 전라도를 가야 맛본다. 김대중의 생가가 있는 전남 신안에서는 매년 6월 밴댕이 축제가 열린다. 조선 시대에는 궁궐 납품을 담당하는 관청이 따로 있어 오뉴월에 귀한 얼음까지 구해 신선한 밴댕이를 궁에 보냈다고 한다. 충무공이 어머니에게 보낸 생선 중에도 '밴댕이'란 이름이 등장한다.

우파 논객 전원책(변호사), 진보 재담꾼 박지원(민주당 의원)이 동시에 '밴댕이 정치' 운운했다. 철 지난 밴댕이가 왜 갑자기 소환됐을까. 정치의 시간표에선 요즘이 딱 밴댕이 제철이다. 밴댕이 정치. 속 좁아 고집이 세고 잘 토라지는 사람을 낮잡아 일컫는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정치'의 줄인 말이다. 실제 밴댕이 내장은 매우 작다. '밴댕이 소갈딱지'는 내장이 좁은 특징뿐 아니라 그물에 끌려 올라오면 마구 날뛰다 제풀에 죽어버리는 성질머리에서 비롯된 관용어다. 실제 밴댕이 내장은 수압에 약해 물 밖에 나오면 잘 터진다. 밴댕이의 한 성깔은 죽음 직전 절망의 몸짓인 셈이다.

'밴댕이 소갈딱지'의 속성은 이렇다. 시야가 좁아 고집불통이고, 참을성 없어 너그럽지 못하며, 뒤끝이 있어 집요하다. 착한 치매와 나쁜 치매가 있듯 밴댕이 소갈딱지도 그렇다. 감정적 부닥침이 덜한 착한 밴댕이, 주변과 갈등을 키우고 보살핌에 어려움을 주는 나쁜 밴댕이가 있다. 착한 밴댕이는 주변에 흔한 '삐돌이'와 유사하다. 삐치는 것은 소극적 저항의 표현일 뿐 폭력성은 없다. 반면 나쁜 밴댕이는 과도한 공격성으로 모두의 골칫거리다. 조그마한 권력이라도 쥐어지는 날엔 평지풍파를 일으킨다.

입방아에 오른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것도 모자라 "이런 국회 없었다"며 책임 전가했다. 하필 그날 부인 생일 만찬은 또 뭔가. 여당 대표가 '의대 증원 재검토 안'을 내놓자 연찬회 참석도, 여당 지도부와의 만찬도 취소했다. 그러면서 당 대표나 그와 친한 사람은 쏙 빼고 비공개로 밥 먹었다고 한다. 거부권 행사도 벌써 21번째. 대통령이 이러니 각료나 정부 기관장들의 행동 또한 독선적이고 공격적이다.

야당도 욕하면서 닮아간다. 야당 인사들이 대통령의 추석 선물을 받지 않겠다고 법석을 떨었다. 반윤(反尹) 선명성 마케팅에는 도움 되겠지만, 이 또한 밴댕이 소갈딱지 행태다. 포용의 정치인 김대중이 자란 신안이 불통의 상징 밴댕이의 산지이고, 유사 밴댕이 '반지'가 이재명이 새로 터 잡은 인천의 명물로 대접받는 것도 묘한 설정이다. '서울대 법대와 밴댕이 정치'란 한 보수 언론인의 최근 칼럼 제목이 인상적이다. "대통령 국정 수행도 성적순이 아님을 입증했다는 게 윤 대통령 업적으로 남을 것 같다. 윤 대통령의 '밴댕이 정치' 때문"이란 내용이다. 유식함이 꼭 유익한 결과를 낳는 건 아니다.

'여론 무시'는 밴댕이 정치의 말기적 증후다. '지지율 20%' 여론조사 결과에 "일희일비 않는다"는 용산의 어법은 불쾌하다. 또한 '굉장히 위험한 멘트'(신지호 국민의힘 전략기획부총장)이다. "국민은 늘 옳다" "국민 뜻 받들겠다"고 한 초심은 온데간데없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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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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