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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 전북 무주 덕유산자연휴양림 가문비나무 숲, 울창한 숲속서 피톤치드 샤워·마음산책…스트레스 싹~

2024-09-27

덕유산자연휴양림 끝자락
수령 100년 가문비나무
150그루 숲 이뤄 하늘 찌를듯
산책로·넓은 광장도 갖춰
28개 데크 잣나무숲 야영장
새벽 고라니 소리에 잠 깨

[주말&여행] 전북 무주 덕유산자연휴양림 가문비나무 숲, 울창한 숲속서 피톤치드 샤워·마음산책…스트레스 싹~
국립덕유산자연휴양림의 자랑인 독일가문비나무 숲. 1931년에 심어진 150여 그루가 깊은 숲을 이루고 있다.

거창을 가로질러 무주로 간다. 창동, 동동, 월천, 당동, 의동, 구례와 같이 한 글자씩 또박또박 발음되는 정직한 땅의 이름을 오물거리며 눈앞에 장벽처럼 펼쳐진 산을 향해 돌진하는 길이다. 거창과 무주를 잇는 고개는 '빼재'다. 옛날 신라와 백제의 접경 지역으로 수많은 이들의 뼈를 묻어야 했던 것에서 유래했단다. '수령(秀嶺)'이라고도 하는데 풍경이 빼어나다는 뜻이다. 절벽 같은 산을 파내고 길을 낸 뒤에는 '신풍령'이라 했다. 추풍령처럼 마을을 번성시키자고 새로 붙인 이름이라 한다. 그러나 그저 오늘은 과수원 길이라 부르련다. 창의성은 없지만 투명하지 않나. 오르고 오르는 거창의 빼재 길은 붉은색과 황금색의 사과밭으로 넘실댄다.

[주말&여행] 전북 무주 덕유산자연휴양림 가문비나무 숲, 울창한 숲속서 피톤치드 샤워·마음산책…스트레스 싹~
데크 산책로가 끝나는 곳에 '광장'이라 불리는 제법 넓은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 명상이나 요가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 국립덕유산자연휴양림

빼재 터널을 통과하면 무주다. 잠깐의 하강길 곁으로 으리으리한 건물들이 서 있거나 세워지고 있다. 그리고 곧 덕유산자연휴양림 안내판이 보인다. 하얀 무궁화 꽃이 늘어선 좁은 길 따라 휴양림으로 간다. 교행이 어려운 좁은 길, 그러나 짧다. 후진 실력을 과시하며 휴양림을 떠나는 두 대의 차를 보낸 뒤 예약하지 않은 방문객 입장을 위해 차단봉 앞에 선다. 먹을 곳, 마실 곳 없고, 산책은 한 시간 정도 걸릴 거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국립덕유산자연휴양림은 덕유산의 연봉 중 해발 1천56m인 선인봉 아래 자리한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새겨진 계곡을 따라 그리 넓지 않은 길이 나란히 오르고, 갓길과 같은 반달모양의 여유공간에 주차장과 연립동, 숲속 수련장 등이 자리한다. 초입의 산림문화휴양관 뒤편의 곁가지처럼 뻗은 골짜기에는 숲속의 집들이 오보록이 들어서 있다. 갈등도 두리번대는 일도 없이 곧장, 계속 오른다. 잎갈나무, 구상나무, 전나무, 두툼한 수피의 굴참나무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고, 붉은 열매를 흔드는 산딸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뽕나무 같은 활엽수가 눈에 띈다. 자작나무, 참죽나무, 개옻나무, 붉나무, 벚나무와도 눈 맞춤한다. 눈은 분주하지만 마음은 꽁무니가 뵈지 않을 정도로 앞서 있다. 야영장 주차장 첫 번째, 두 번째를 지나 사방댐 앞에 넉넉히 마련되어 있는 세 번째 주차장에서 선다. 차가 갈 수 있는 길의 끝이다.

◆ 덕유산 가문비나무 숲

춥다. 생각보다 깊은 숲인가 보다. 조금 오르면 휴양림의 북쪽 거의 끝자락이다. 이곳 계곡 서편에 '독일가문비 숲'이 있다. 숲으로 난 데크 산책로에 오르며 감기가 올지도 모른다는 오싹오싹한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 정도의 추위라면 뱀은 오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기대는 매우 든든한데, 데크 산책로의 시작부터 발밑을 전혀 살필 수 없기 때문이다. 곧은 줄기들, 나선형으로 상승하며 뻗어나간 가지들, 지구의 중심을 향해 축 늘어진 이파리들, 무엇보다도 그 곧은 줄기들의 경건한 가슴 때문에 오래된 고딕 성당에 들어선 것처럼 하늘만 본다. 가만히 하늘만 보는데 영혼은 데크 산책로의 완만하고 긴 지그재그를 빠르게 걸어가는 것 같다.

이 좋은 냄새는 어디서 나는 것일까. 몇 년 전 옆집에 있었던 목공 작업실의 냄새보다 촉촉하고 달다. 데크 길 아래 이리저리 기울어진 땅은 솔가지처럼 뾰족하고 가느다란 잎으로 덮여 있다. 독일가문비나무의 본래 이름은 노르웨이가문비나무다. 우리나라에서는 1931년 독일에서 10만여 그루를 들여왔는데 그때부터 독일가문비나무라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나는 노르웨이도 독일도 부르지 못하고 그저 가문비나무 숲이라 하고 있다. 국립수목원이나 국립생물다양성 정보 등에서 모두 '독일가문비'라 적고 있지만 하루키가 쓰고 비틀스가 노래하고 그렇게 한 시대 청춘의 심정을 찢어놓은 노르웨이 숲을 어떻게 차치하나.

이 숲의 가문비나무는 약 150그루, 10만그루 묘목 중 일부가 자라나 수령이 100년 가까운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길의 울타리 너머 가슴께에 선 안내판이 '가장 큰 나무'를 알려준다. 높이 34m, 지름 85㎝, 둘레 267㎝로 어른둘이 손을 맞잡아야 안을 수 있는 크기다. 몸은 검다. '가문비'가 '검은 수피'라는 뜻이라 한다. 검은 줄기를 따라 올라 하늘을 바라보면 그네를 타는 것 같다. 가문비나무는 피아노의 향판, 바이올린과 클래식 기타의 앞판에 쓰인다. 울림과 공명을 주관하는 부분이다. 범선의 마스트 돛대에도 쓰인다. 이제는 피아노를 보아도, 기타를 만져도, 바이올린 소리를 들어도, 범선을 쫓아도, 이 숲과 하늘을 떠올릴게 틀림없다.

데크 산책로가 끝나는 곳에 '광장'이라 불리는 제법 넓은 공간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 서서 하늘로 높이 뻗어있는 나무들을 바라본다. 그 순간이 곧 명상일 것이다. 오늘은 출입 금지다. 데크 수리를 기다리는 중이다. 여기서부터 산림경영문화실 앞까지 1.5㎞의 숲속 산책로가 있다. 산책로도 현재 폐쇄다. 어느 산책자가 말벌과 땅벌에 쏘인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벌집을 제거할 때까지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오솔길은 숲속으로 저 혼자 사라지고, 아무도 없다. 가문비나무 숲에 혼자다. 뭐든 나누는 것이 좋은 것이라지만, 오늘은 혼자 다 가지는 것이 좋은 것이라 하자.

[주말&여행] 전북 무주 덕유산자연휴양림 가문비나무 숲, 울창한 숲속서 피톤치드 샤워·마음산책…스트레스 싹~
엄청난 잣나무 숲은 야영장이다. 끝없이 높은 잣나무 아래 28개의 납작한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 잣나무 숲의 야영장

가문비나무 숲 앞에서 몇 걸음 더 오르면 선인봉 등산로가 있고 계곡을 건너 휴양림 초입으로 연결되는 순환로가 있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조금씩 밝아지면서 가을에서 여름으로 되돌아가는 듯 차갑던 몸이 훈훈해진다. 그리고 잣나무 숲이 나타난다. 엄청난 잣나무들이다. 지면에 뿌리를 드러낸 저 잣나무는 이곳의 어머니 나무일지도 모른다. 동맥처럼 굵은 뿌리가 어른 주먹만 한 잣송이들을 품고 있다. 이곳이 야영장이다. 끝없이 높은 잣나무 아래 28개의 납작한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잠이 들면 새벽 고라니 울음소리에 잠을 깬단다. 지금은 아무도 없다. 텅 빈 데크에 빗자루만 덩그렇다. 휴양림을 빠져나가던 그 차가 오늘 새벽 고라니 울음소리에 잠을 깬 마지막 야영객이었을지도 모른다.

숲 속에 있는 동안 시간을 잃은 최후의 객처럼 떠난다. 가장 아래 데크에서 다시 계곡을 건너면 첫 번째 야영장 주차장이다. 세 번째 주차장으로 향하며 또랑또랑한 계곡물소리를 듣는다. 이곳저곳 계곡을 따라 큰 눈덩이 마냥 피어있는 궁궁이(천궁) 꽃이 마지막 여름의 문턱을 넘는 듯하고 소국처럼 보이는 하얀 참취 꽃과 깨알 같은 분홍 여뀌는 이미 가을이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12번 대구광주고속도로 거창IC로 나간다. 톨게이트 앞 회전교차로에서 3시 방향 출구로 나가 함양, 버스터미널 방면 1089번 지방도를 따라 계속 직진(회전교차로에서는 12시 방향 출구), 주상면 주상삼거리에서 무주, 구천동, 고제 방면 10시 방향으로 나가 직진, 완대삼거리에서 무주, 설천 방면 3시 방향으로 나가 37번 국도를 타고 직진하면 된다. 빼재터널 지나 조금 내려가면 오른쪽에 덕유산자연휴양림 입구가 있다. 숙박객과 야영객 외 방문객의 입장료는 어른 1천원, 청소년 600원, 어린이 300원, 주차료는 경차 1천500원, 중형 3천원, 대형 5천원이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로 입장이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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