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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가을 소묘

2024-10-08
[문화산책] 가을 소묘 가을밤 귀뚜라미 소리는 우는 것일까, 노래하는 것일까. 베짱이와는 같은 곤충과인데 왜 베짱이는 노래한다고 하고 귀뚜라미는 운다고 할까. 번식을 위해 수컷이 암컷을 부르고 있는 거라면 노래를 불러야 제격이지 않을까. 낯선 암컷에게 세레나데를 들려줘야 하는 마당에 울기부터 해서야 수컷의 체면이!

귀뚜라미도 감정이 있는 동물이니 울 때도 있고 노래할 때도 있을 것이다. 두 날개를 비벼서 내는 소리가 아무리 단순하다고 해도 울음과 노래는 분명 차이가 있을 터이다. 정성을 바쳐 노래하는 귀뚜라미의 구애를 우리가 혹, 인간의 마음대로 울음으로 단정하는 건 아닐는지.

가을꽃이 피는 것은 생존일까, 문화일까. 벼가 자라던 넓은 들에 곡식을 침범한 꽃들이 설쳐대기 시작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한 지자체들의 고육책이다.

길가에서 한들한들 손님을 맞던 코스모스도, 산자락에 다소곳이 피어 열매를 맺던 메밀꽃도 임의로 만든 꽃 단지로 대이동을 했다. 집단을 이룬 꽃들이 연일 거대한 군무(群舞 )를 펼친다.

"와아, 대단하네!"

대형버스에서 내린 손님들의 찬사에 코스모스는 길을 버리고 메밀꽃은 산을 버렸다. 꽃들도 머리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생존을 분석하고 문화를 엿보게 되었다. 이제 꽃들에게는 벌(蜂)이 아닌 인간이 보인다. 벌은 생존이지만 인간은 권력이다. 그들은 전능하다. 씨를 뿌려주고 번식을 보장한다.

바람이 부는 것은 유혹인가, 폭력인가. 넓은 들에 슬그머니 가을바람이 찾아든다. 꽃들이 일제히 바람을 품고 몸을 흔든다. 남자친구를 따라 나온 소녀가 메밀꽃에 코를 댄다.

"지린내 나."

메밀꽃은 장미나 채송화가 아니다. 열매를 맺어 양식이 되어야 하는데 어찌 향내만 있을까. 짓궂은 바람이 짠내나 지린내를 흔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소년이 달랜다.

"메밀꽃 향기는 원래 그래."

코스모스 단지에서 소년, 소녀가 사진을 찍을 모양이다. 처음 만난 내게 스마트폰을 맡기더니 부리나케 손을 잡고 꽃속으로 들어간다. 시(市)에서 포토존으로 지정해 놓은 곳이다.

"에구머니나!"

포즈를 취하다 말고 소녀가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소년도 놀라 소녀를 돌아다본다. 소녀가 한 발을 들고 자신의 발에 밟힌 물체를 가리킨다.

"귀뚜라미네."

소년이 무심히 귀뚜라미를 집어 멀리 던져 버린다. 여자 친구를 불편하게 한 벌(罰)일 터이다. 눈치 없이 꽃 더미 속에서 무얼 하다 밟혔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울었는지 비명을 질렀는지 나도 듣지 못했다.
박기옥<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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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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