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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별천지 영양의 숲과 마을 .9] 자박자박 읍내 한 바퀴

2024-10-10

왁자했던 빙어 시즌 잊은 듯…다보록한 고요가 꿈만 같아

[별천지 영양의 숲과 마을 .9] 자박자박 읍내 한 바퀴31번 국도를 타고 반변천을 거슬러 가다 보면 영양읍 현리의 너른 들판 너머 산으로 둘러싸인 영양 읍내의 하얗고 다보록한 모습이 보인다. 조금 더 나아가면 양평교차로다. 읍내에서 흘러온 동부천이 반변천으로 흘러들고 거대한 당산목 느티나무가 덩그러니 서 있는 자리, 여기서부터 영양 읍내를 관통하는 중앙로가 시작된다. 예부터 이 일대 천변을 송영담(送迎潭) 혹은 송인당(送人塘)이라 불렀다 한다. '손님을 맞이하고 보내는 장소'다. 정확한 송영의 장소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느티나무는 분명 두 팔 벌려 반기는 모습이다.

[별천지 영양의 숲과 마을 .9] 자박자박 읍내 한 바퀴◆영양읍의 중심, 중앙로와 영양군청

중앙로는 왕복 2차로다. 반딧불이와 별들의 가로등을 따라 현1리 표지석이 서 있는 동구를 스친다. 저 들이 비워지고 겨울이 깊어지면 현리들 아래 천변은 빙상장이 된다. 얼음 열차가 달리고 썰매와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 빙어를 잡는 사람들로 왁자해진다. 빙어 시즌 숙소 문제로 애먹은 기억이 떠올라 가을 들판의 고요가 꿈같다. 영양군 로컬푸드 직매장을 지나 영양 중·고등학교 즈음 나란히 함께하던 동부천이 동쪽으로 모습을 감추고 중앙로 따라 번다한 읍내의 분위기가 풍기기 시작한다. 키 큰 아파트와 모텔, 우체국, 법원, 농협 사이로 온갖 가게들이 빼곡해 길 만큼 하늘도 좁다. 그러고 보니 전봇대가 보이지 않는다. 유난히 말간 하늘에 가로등의 반딧불이만 선명하다 했더니 2019년에 전선 지중화 공사를 했다고 한다. 간판도 정갈하게 정비한 모습이다.

코스모스가 예쁘게 그려진 영흥슈퍼에서 좌회전해 영양군청으로 간다. 영양군지에 따르면 영양읍은 탕건봉에서 남쪽 현리 들판까지 살부채를 펴서 흔드는 모습이라 한다. 탕건봉 아래 읍을 펼쳐 살피듯 관아가 있었는데, 바로 그 자리에 지금 영양군청이 자리한다. 본래 관아는 현리에 있었고, 공민왕 때 왜구의 침략으로 불탄 뒤 근 300여 년 동안 영양에는 관아가 없었다. 그러다 조선 숙종 때 현재의 군청 자리에 관아가 들어섰고 관아를 중심축으로 동부리와 서부리가 배치되어 군의 중심이 되었다. 영양군청 앞에 솔광장이 있다. 성탄절이면 트리에 불을 밝히고, 초파일에는 연등에 불을 밝히는 곳, 바닥에서 분수가 솟고, 버스킹이 열리고, 어린이날 행사와 각종 전시회, 다양한 캠페인이 개최되는, 영양군민의 중심 광장이다.


들판 너머 산으로 둘러싸인 읍내
중앙로 따라 온갖 가게들 빼곡히
전선 지중화 공사로 정갈한 모습

영양남씨 시조 기리는 '여남강당'
시제땐 전국 각지 후손 모여들어

별천지 상징 은하수 막걸리 쥐고
연꽃 피어오른 삼지수변공원으로
밤이면 색색 조명 별빛처렴 반짝


[별천지 영양의 숲과 마을 .9] 자박자박 읍내 한 바퀴◆영양남씨의 시작, 여남강당

영양군청의 왼쪽에는 영양초등학교가 있고, 오른편에는 영양읍 행정복지센터가 자리한다. 군청과 행정복지센터 사잇길은 '여남길'이다. 대여섯 푸른 지붕이 다보록한 여남길 고샅으로 들어서면 기와를 얹은 토석담이 단정하게 나아가 소박한 사주문에서 멈춘다. 이곳은 '여남강당(汝南講堂)'으로 영양남씨(英陽南氏) 시조인 남민(南敏)을 기리는 곳이다.

남민은 본래 당나라 봉양부(鳳陽府) 여남(汝南) 사람으로 본명은 김충(金忠)이다. 신라 경덕왕 14년인 755년, 사신으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가던 중 태풍을 만난 그는 현재의 영덕 축산도(丑山島)에 표착하게 된다. 그가 이 땅에 정착하기를 원하자 경덕왕은 그가 여남에서 왔다 하여 남씨(南氏) 성을 내리고 이름을 민(敏)이라 했다. 그리고 영의공(英毅公) 시호와 함께 영양현(英陽縣)을 식읍으로 하사했다. 소론의 거두 남구만, 대사성 남현로, 연산군에게 선정을 일깨웠던 남세주, 학자 남사고, 여류 독립운동가 남자현 등이 모두 남민에게 뿌리를 두고 있다.

그의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고 숙종 3년인 1677년에 시조를 향사하기 위해 향현사(鄕賢祠)를 건립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순조 3년인 1830년에 서원으로 승격되어 '여남서원'이라 했다. 서원은 강학과 선비들의 모임터로 널리 이용되다가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이후 후손들은 1920년에 다시 시조를 기리는 건물을 지었는데, 그것이 '여남강당'이다.

현재 여남강당의 북쪽 동부리 재궁몰에 재실인 도항재(道項齋)가 있고 도뭇골(도항동)에 남민의 묘가 있다. 1958년 후손들이 선조 남민의 묘라고 전해오는 곳을 발굴해 보았는데 그곳에서 신라 시대의 석관이 나왔다고 한다. 이에 무덤을 만들고 비석을 세워 묘역을 조성했고 매년 음력 10월10일마다 향사하고 있다. 지금도 시제 때면 전국 각지에서 후손들이 모여들고, 그날 영양읍의 숙소와 식당은 남씨 후손들로 가득 찬다고 한다.

[별천지 영양의 숲과 마을 .9] 자박자박 읍내 한 바퀴◆새롭고 오래된 영양양조장

여남강당 사주문에서 연결되어 곧고 긴 골목을 이루는 토석기와담 너머로 박공지붕의 건물들이 보인다. 수 년전 보았던 그곳은 문을 닫은 지 일 년쯤 되어가던 영양양조장이었다. 건물의 외벽은 담쟁이로 뒤덮여 소설적 정취를 자아내고 있었고 풀꽃이 자라난 너른 마당에는 갓 씻은 듯 반짝거리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통이 여린 꽃들 위에 누워 있었다. 입구 시멘트 담장 기둥에는 '경북도산업유산 영양탁주합동' '향토뿌리기업' 등의 동판이 붙어 있었고 입구 미세기문의 상방에는 '전화6'이라는 표식이 붙어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영양에서 여섯 번째로 전화기가 설치되었다는 표시다. 당시 영양지역을 통틀어 전화기는 10대뿐이었다고 한다. 이 모든 표식은 이곳이 오래 사랑받았음을 짐작게 했다. 영양양조장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 '영양주조'로 문을 열었고 1926년에 공식적으로 사업체를 등록했다. 이후 100여 년, 3대에 걸쳐 막걸리를 빚어온 영양양조장은 급속한 산업화와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의 등장으로 점차 기세가 꺾였고 결국 2018년 경영난으로 폐업했다.

영양양조장 건물 외관은 예전과 큰 차이가 없다. 그저 낡고 녹슬었던 지붕이 깔끔하게 정비됐고 시멘트 담장이 나무 울타리로 바뀌었다. '전화6' 표식도 그대로다. 영양양조장은 2022년 영양군과 교촌에프엔비(F&B)의 도움을 받아 '발효공방1991'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각 건물의 내부도 깔끔하게 리모델링되어 양조장과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카페 소풍, 청년창업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카페 소풍에서는 할 일이 많다. 먼저 문을 밀며 흘끔 '전화6'과 눈 맞춤하고, 스르륵 문을 닫으며 단단한 문기둥을 슬쩍 만져 본다. 이 건물에 쓰인 나무가 압록강 적송이라니 100년 전 압록강 물 내에 손 한번 적셔보는 일이다. 그리고는 영양의 농산물로 만드는 음료와 디저트를 고른다. 막걸리 푸딩, 막걸리 타르트 등 눈빛 흔들리게 하는 이색 메뉴가 여럿이다. 그리고 발효 공방에서 생산하는 '은하수' 막걸리를 두 손 무겁게 들고 나선다. '은하수'는 별빛 가득한 영양의 밤하늘을 상징한다.

◆홍해가 갈라진 듯 너른 황용천길

영양읍행정복지센터는 영양양조장 바로 옆에 바짝 붙어 있다. 행정복지센터 입구에서 중앙로를 따라 약 70m쯤 오르면 영동교다. 여기까지가 읍내 번화가로 인식되지만, 중앙로는 영동교 건너 일월면 곡강리 주치재까지 이어진다. 주치재 너머 동부리의 깊은 골짜기에는 유기동물보호소와 경북 최초의 반려동물 놀이터가 있다. 전체 180평(600㎡) 규모로 운동장, 울타리, 놀이기구 등 반려동물을 위한 다양한 시설이 설치돼 있다. 반려동물놀이터는 영양군의 야심작으로 내년까지 유기동물 입양센터와 군립 동물병원, 애견 놀이터 등을 갖춘 동물복지 복합센터를 준공할 예정이다.

영동교 상류에는 황룡천이 흐른다. 영동교 하류는 마치 홍해가 갈라진 듯 너른 '황용천길'이 남쪽으로 향한다. 영양읍 황룡리에서 발원한 황룡천은 동부리를 통과하면서 동부천이라 불리는데, 동부천을 복개한 길이 '황용천길'이다. 황용천길 동쪽에는 영양시장이 넓게 자리한다. 1918년부터 이어져 온 영양시장은 매월 4일과 9일에 열리는 5일장이다.

시장 입구의 영양 객주는 외씨버선길 6길의 시작점으로 찻길 따라 동쪽으로 영양중앙초등학교와 영양교육청을 지나면 삼지수변공원이 지척이다. 남쪽으로 나아가는 황용천길은 시장3길 앞에서 복개를 걷어내고 동부천 물길을 드러낸다. 작은 인공폭포가 시원하게 떨어지고 커다란 연꽃이 피어올라 있으며 밤이면 색색의 조명이 은하수처럼 켜진다. 그리고는 또 남쪽으로 흘러 영양중고등학교 즈음에서 중앙로와 만나고, 나란히 반변천 송영담으로 간다. 사이드미러 속에 두 팔을 번쩍 들어 송별하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서 있다.

글=류혜숙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영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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