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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 이재선과 이등병의 편지

2024-10-14
2024101301000413700015391대구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을 다시 찾은 것은 가을볕 좋은 지난 9월 마지막 토요일이었다. 벽화를 따라 길 중간쯤 들어서니 군복 차림의 한 남성이 보인다. 철모와 군화까지 제대로다. 그가 연신 행인을 붙잡고 뭐라 뭐라 설명한다. 혹시나 하고 다가가 보니 이날 만나기로 한 연극배우 이재선이 맞다. 앞서 일부러 경북 안동까지 찾아와 소식을 전하던 그를 응원하기 위해 방문했지만, 이런 모습으로 자신의 연극공연을 홍보하고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지하 1층에 세를 얻어 마련한 그의 '전용 극장'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입구에는 '이재선신체극연구소'라는 간판이 쪼그맣게 걸려 있다. 거리홍보가 먹혔을까. 공연장으로 내려가는 비좁은 지하 계단은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으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무대와 객석은 초라했다. 60㎡(약 20평)의 공간에 의자 33개가 놓여 있다. 이날 관객 수는 모두 37명이다. "오늘도 만석입니다."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너스레웃음이 마치 연극인 이재선의 숙명처럼 느껴졌다.

2013년 초연된 일인극 '이등병의 편지'는 거리에서 공연되다 2016년부터 이곳 지하로 무대를 옮겨 주말마다 상설공연되고 있다. 10년이 넘는 동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무료입장이라는 점과 연출·연기·의상·조명·음향·홍보 등을 혼자서 다 한다는 점이다. 러닝타임 15분의 슬랩스틱(신체적 개그로 웃음을 끌어내는 코미디)에 객석은 포복절도한다. 본 공연 앞뒤로 15분간 이어지는 극에 대한 설명은 또 하나의 개그였다. 정교한 연출과 연기가 초미니 무대의 몰입감을 배가시켰다.

가치를 알아본 경북지역 기관·단체에서도 공연을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김광석길이 이 연극을 대하는 태도는 너무나 아쉽다. 등록되지 않은 비주류 공연이어서일까. 김광석길 안내판에는 카페와 음식점은 표기돼 있어도 '이등병의 편지' 공연장은 보이지 않는다. 수년간 지속적으로 공연이 이어지는 등 엄연히 김광석길의 문화예술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음에도 행정기관에서 실태 파악을 위해 현장에 직접 나온 것은 이날이 처음이라는 후문이다.

김광석길 방문객 수가 한때 연간 150만명을 넘었으나, 올들어서는 8월까지 월평균 7만명에 그치고 있다. 몇 년 전 조사에 따르면 방문객은 평균적으로 약 두 시간 머무르며, 70%가 카페와 식당을 찾는다고 한다. 외지에서 온 젊은 관광객들이 벽화 인증사진을 찍고 카페에 들렀다가 떠나는 것으로 분석된다. 대구 중구청이 매달 한 차례 야외콘서트홀에서 무료영화와 문화공연을 마련하고 있지만 콘텐츠가 너무 빈약하다. 오죽하면 '김광석길은 기대하지 않고 가면 만족한다'는 방문 후기가 올라올까. 이재선 같은 자발적 예술인이 더 많이 똬리를 틀고 이 길을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1995년 서울 동숭동 학전소극장에서 1천 번째 소극장 공연을 가진 '영원한 가객' 김광석은 이런 소감을 남겼다. "조치훈씨 글 중에 이런 게 있더군요. 바둑을 이기려고 두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돌 하나하나 정성 들여 놓다 보니까 기성도 되고 명인도 되고 뭐 그랬노라고. (저도) 천 회는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매회 한 줄 한 줄 정성 들여 쳤지요. 그러다 보니 천 회 되대요." 연극배우 이재선의 '이등병의 편지'가 10월13일 기준 748회 공연을 마쳤다. 그의 정성 들인 무언(無言)의 몸짓 하나하나가 상업적 성공만을 목표로 하지 않기에 1천 회 공연까지 다다를 수 있도록 응원하고 싶다.

변종현 경북본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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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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