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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 고통의 산물을 읽는 고통

2024-10-17

읽기 힘든 책을 마주하며
고통 속 의미를 찾아내는
문학의 깊이를 탐험하며
노벨상 작품에 빠져들어
삶과 문학은 닮아있는 거울

[더 나은 세상] 고통의 산물을 읽는 고통벌써 두 달째 잡고 낑낑대는 책이 있다. 같은 사무실을 쓰는 동료 4명이 하는 책읽기 모임에서 받은 책이다. 그 책읽기 모임은 순번을 돌아가면서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사서 나눠주고 각자 읽은 후 감상을 나누는 식으로 운영되는데, 열정적인 독서가들의 모임과는 거리가 멀다. 유튜브는 물론 온갖 재미난 드라마와 서바이벌 예능이 스트리밍 서비스로 넘쳐나는 영상의 홍수 시대에 책읽기가 힘드니 1년에 최소 몇 권이라도 읽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의기투합한 모임이다. 그래서 자기 순서가 돌아오면 무슨 책을 사야 할지 고민하는 게 스트레스이기도 하고, 각자 선정하는 책의 장르도 다 다르고, 광고에 현혹되어 고른 책으로 실망한 적도 종종 있다.

아무튼 이번에 받은 책은 동료 A가 SNS에서 '내가 읽은 올해 책 중 최고'라는 포스팅을 보고 지난달 초에 사 준 '방랑자들'. 올가 토카르추크라는 폴란드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대표작이란다. 소설을 같이 읽은 적도 있긴 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은 이 모임에서는 처음이라 간만에 심오한 문학에 빠져보리라 기대했는데 웬 걸. 장편소설이라는데 큰 줄거리라고 할 만한 게 없어 잘 읽히지 않았고, 게다가 양은 왜 또 그렇게 많은지. 다른 동료들도 반응이 나와 비슷했다. "진짜 안 읽혀서 내가 난독증인가 했다니까." "작가가 뭘 말하려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 A는 민망해하며 이번 책모임은 없는 것으로 하고 아예 다음 책 선정으로 넘어가자고 제안했다. 막상 그런 말을 들으니 나머지 동료들이 다 만류했다. "그래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대표작이라는데 끝까지 읽어보자.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읽겠어?"

그러던 차에 들려 온 스웨덴 한림원의 깜짝 뉴스. 나도 대부분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다 그날 밤에도 잠자리에 들기 전 밀린 숙제를 하는 심정으로 그 책을 다시 집어 드는데, 갑자기 노벨문학상이 가지는 무게가 새삼스럽게 '너무나 구체적으로' 와 닿았다. 노벨문학상이 어떤 상인지 상식적으로 모르지 않지만, 이제 우리도 수상자가 있다는 현실감에서 그렇게 선명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난해하다고 하소연하면서도 완독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 상의 무게 때문이 아닌가.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그 소설가 이름도 들어본 적도 없고, 딱히 문학에 큰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폴란드라는 나라에 관심을 가져 본 적도 없어 굳이 이 어려운 책을 굳이 꾸역꾸역 읽을 이유가 없지만 노벨문학상이라는 타이틀이 작품을 이해해보려고 애쓰는 우리의 모습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문학의 문외한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문학에 큰 관심이 없는 평범한 우리들도, 문학이 인간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창이며 고통 없는 삶이 없기에 고통 없는 문학은 있을 수 없다는 정도는 안다. 당대 최고봉의 문학 작품이 얼마나 지난한 고통 속에서 나왔을지,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을 들으면서 조금이나마 상상도 해본다. 그러니 당연하다. 그런 고통의 산물을 읽는 독자에게 어찌 읽기의 고통이 없겠는가.

내 애물단지 책(아직은 이렇게 부를 수밖에 없다)의 작가 토카르추크는 소설을 가리켜 국경과 언어,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는 심오한 소통과 공감의 수단이라고 했다고 한다. 아직 작품은 이해 못하고 있지만, 그 말 자체에는 쉽게 공감이 된다. 일단 끝까지 읽고 보자. 삶이 쉽지 않은데, 삶의 정수를 담은 문학이 어찌 쉬울 것인가.

정혜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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