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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 흉악범이 웃는 나라

2024-10-21
[월요칼럼] 흉악범이 웃는 나라우리는 악마를 보았다. 10여 년 전 상영된 한 영화 제목처럼 말이다. 얼마전 전남 순천에서 일면식도 없는 10대 소녀를 '묻지마' 살해한 그 놈이다. '흉악 살인범'이라는 선입견 탓일까. 놈의 머그샷 얼굴을 본 순간, 적이 소스라쳤다. 눈빛부터 살벌하고 음흉하다. 놈이 범행을 저지른 뒤 히죽히죽 웃는 얼굴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관상(觀相)은 과학이라고 했던가. 과학적 근거가 없는 말이지만 놈의 관상만큼은 그렇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억울하게 불귀의 객이 된 소녀와 유족을 생각하니 그렇다. 아버지를 위해 약을 사러 나온 소녀는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했다. 야당의 한 의원은 "범인에게 사형을 선고·집행해 슬픔에 젖은 유가족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야 한다"고 했다.

다시 '사형제'를 생각한다. '묻지마' 흉악 살인범, 고민하고 자시고 할 게 있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아닌가. 국민의 보편적 법 감정이다. 형법에도 사람을 죽인 자에 대해 사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돼 있지 않은가. 하지만 사형제는 우리나라에서 효력을 잃은 지 오래다. 1997년 이후 27년 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다. 2017년 이후엔 극악무도한 살인범에게도 사형이 최종 선고된 일이 없다. 사형제는 그동안 세 차례나 헌법재판소 판단에 맡겨졌다. 갈수록 '위헌' 의견이 늘고 있다. 세 번짼 합헌 결정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내 가족을 죽인 범인이 멀쩡히 살아 있다' 범죄 희생자 유족은 분하다. 무섭다 못해 소름끼친다. '묻지마' 살인·폭행범 상당수는 '개전(改悛)의 정(情)'이 없어 보인다. 사형 선고도, 집행도 없으니 경각심도, 두려움도 없다. 여자 친구를 흉기로 무참하게 살해한 자는 장밋빛 미래를 꿈꾼다. 면회 온 가족에게 "10년만 살다 나오면 된다. 나오면 행복하게 살자"고 했단다. '부산 돌려차기' 가해자는 출소하면 피해자를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멈추지 않는다. 이러니 흉악범에 대한 사형제나 영구격리론이 숙지지 않는 거다. 흉악범이 반성하는 척, 그럴 듯한 연기를 통해 가석방을 받아 사회로 나오는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게다.

훗날 '사형제 위헌' 결정을 고려한 대비책이 절실하다. 대안 가운데 하나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다. 흉악범에 대한 무관용 처벌을 유지하면서도, 국제적 인권 기준에 부합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헌재 결정을 기다릴 시간이 없다. 우선 도입하면 어떨까. 사형제 논란이 정리될 때까지 병존(竝存)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지난해 관련 개정안이 국무회의까지 통과했다. 그러나 국회에서 의결되지 못한 채 자동 폐기됐다. 지난 21대 국회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국민의 법 감정이 '사형제 존치'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으로 기울겠나. 흉악 범죄자에겐 돌이킬 수 없는 형극의 길을 걷게 하는 게 사법 정의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난 주 대구고·지법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렸다. 여야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대구판 돌려차기' 가해자의 항소심 형량이 1심 판결(징역 50년)보다 절반 가깝게(징역 27년) 줄어든 사실을 질타했다. 민생(民生)이 별 건가.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고, 억울하게 범죄 피해를 입은 국민의 한을 풀어주는 일부터가 아닌가. '가석방 없는 종신형'만큼은 22대 국회에서 여야가 진지하고 적극적인 검토를 벌여주길 바란다.

이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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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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