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주의 시대 들어섰다
아직 대통령취임 안했는데
세계 흔드는 트럼피즘시대
거짓의 정치적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듯
포스텍 명예교수 |
2024년 11월6일, 트럼프가 미국 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우리는 '트럼프주의' 시대에 들어섰다. 트럼프는 아직 대통령에 취임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대선 구호가 암시하듯이 트럼프가 강력하게 대변하는 자국 우선주의는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했던 모든 것을 낯설게 만든다. 자유 민주주의라는 이념에 기반하여 글로벌 경찰국가의 역할을 떠맡았던 미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는 적이든 친구든 상관없이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국가와도 거래할 것이라고 공언한다. 트럼프주의가 지배하는 미래에 세계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세계의 지정학적 질서가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제까지의 동맹국도 더는 믿을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 뉴노멀이 될 것이다.
물론 변하는 것이 정치만은 아니다. '트럼프 2.0' 시대를 맞아 미국의 증시가 폭등하는 것에 비례하여 다른 지역의 증시는 폭락하고 있다. '트럼프 환율'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달러 강세와 함께 환율은 연일 고공행진하고 있다. 트럼프는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소득세를 폐지하는 대신 그만큼의 세원을 수입 관세로 채우겠다고 한다. 미국의 주요 경쟁국인 중국뿐만 아니라 무역에 의존하는 세계의 모든 국가에 대한 관세는 경제 전쟁의 주요 수단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반도체 기업에 왜 돈 주나, 관세 매겨 미국에 공장 짓게 하자"는 트럼프의 말이 현실이 되면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는 심각하게 타격을 받을 것이다. 돈과 기업, 인력과 일자리가 모두 미국에 집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그 밖의 나머지 국가'라는 새로운 구별이 뉴노멀이 될 게 분명하다.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세계는 이미 변화하고 있다. '트럼프 2.0' 시대에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 우리는 두려워하며 긴장하고 있다. 트럼피즘의 영향력이 이렇게 광범위하고 강력하다 보니 이제는 트럼프를 '기이한 정치인'으로 비난하는 대신 트럼피즘을 이해하고, 그 근원과 원인을 파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렇다면 트럼피즘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트럼피즘(trumpism)은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정치적 기반과 관련된 정치 이데올로기 또는 미국의 정치 운동이다. 트럼피즘은 우익 포퓰리즘, 국가 보수주의, 신민족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를 통합하고 상당한 반자유주의 및 권위주의적 신념을 특징으로 한다.
'트럼피즘'이라는 용어는 물론 도널드 트럼프라는 정치인의 이름에서 파생되었지만, 트럼프와 트럼피즘은 같지 않다. 미국에는 제퍼슨, 윌슨, 잭슨 등 유명한 정치인의 이름을 딴 다양한 전통들이 있다. 어떤 전통은 자유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어떤 전통은 본래부터 민족주의와 권위주의를 추구한다. 무식하고 천박하고 권위주의적인 태도와 거짓말을 일삼고 분열과 조작을 획책하는 그의 정치 스타일만 보면 트럼피즘은 낯설기 짝이 없는 부패 현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트럼프만 사라진다면 미국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정말 착각이다. 트럼피즘은 미국 정치문화의 일부이다. 미국의 민족주의적 분리주의는 세계에 개방적인 자유 민주주의보다 훨씬 더 오래되고 뿌리가 깊다. 따라서 트럼피즘을 이해하려면 미국 자체를 이해해야 한다.
트럼피즘이라는 부정적 형식으로 부활한 미국의 전통은 도대체 무엇인가? 트럼피즘을 떠받치고 있는 첫 번째 기둥은 자국 중심의 민족주의이다. 진정한 대중 민주주의를 시작한 선도자라는 평가를 받는 미국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은 실제로 백인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한 민족주의자였다. 그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원주민을 상대로 대량 학살 전쟁을 벌였던 미국 정착 개척지를 따라 광범위하게 퍼졌으며, 스코틀랜드-아일랜드 정착민과 남부 노예 소유자들 사이에 확고히 뿌리를 내렸다.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권력분립을 무시했던 잭슨의 전통이 트럼피즘으로 부활한 것이다.
트럼피즘의 두 번째 기둥은 종교적 가치에 기반한 가부장제이다. 트럼프는 사실 교회 예배보다 골프 코스를 더 좋아하지만, 트럼프 지지자들은 대부분 상당히 종교적이다.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투표를 한 사람 중 대다수가 매일 기도를 하는 전통적 복음주의자라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1970년대 이후 기독교 우파는 강력한 보수세력이 되어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로 뭉쳤고, 이는 강력한 반이슬람 정서를 조장했으며, 최근에는 러시아 정교회에 대한 친밀감을 키워왔다고 한다.
트럼피즘의 세 번째 지주는 인종주의이다. 전후 미국은 유럽 제국주의적 인종차별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 정착민 전통에 깊이 뿌리를 둔 보수적 인종주의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민족 자결주의를 제창한 것으로 유명한 우드로 윌슨이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서 인종 평등 조항에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미국이 형성한 1945년 이후 자유주의 세계 질서는 사실 미국 북동부의 국제주의 민주당원과 남부의 인종차별주의적 민주 당원의 연합에 의해 지지를 받았다. 물론 미국의 피할 수 없는 인구통계학적 현실과 미래는 '비백인'이다. 그럴수록 인종 문제는 미국 정치의 중심이 되었다. 그동안 미국의 정치에서 자신이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유권자의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였는데, 멕시코인을 살인자와 강간범으로 부르고 난민과 이민자를 쓰레기 취급하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것이다.
트럼피즘은 이제까지 부정적으로 여겨지고 극복의 대상이었던 민족주의, 남성 중심적 가부장제, 인종주의를 더 이상 숨기지 않는다. 승리를 원하는 사람은 자기 입장과 의도를 숨겨서는 안 된다. 트럼프가 어떻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지는 모르지만, 그는 분명 기후 협약에서 탈퇴하고, 유엔 자금 지원을 중단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것이다. 그는 진실을 수용하지 않고, 자신의 세계관에 맞지 않는 모든 것을 가짜 뉴스라고 배척한다. 트럼피즘의 시대는 거짓말이 현실이 되는 시대이다. 트럼피즘의 시대는 거짓의 정치적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경험하고 실감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포스텍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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