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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늑대가 운다, 가부장제 억압 속 새로운 서사로 그려낸 여성

2024-12-20

여성·약자 삶과 애환에 천착

안영실 작가 세번째 소설집

포용의 시선 담은 '모성 담론'

[신간] 늑대가 운다, 가부장제 억압 속 새로운 서사로 그려낸 여성
신간 소설집 '늑대가 운다'는 권력과 폭력에 의해 바깥으로 밀려나 억압받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눈을 뜨자 숙희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보일러가 망가져서 며칠째 방은 냉골이었다. 꿈 속에서 너는 얼음 바늘이 몸을 찌르는 차가운 호수에 있었다. 그때 멀리 초원에서 늑대의 울음이 들렸고, 그 소리는 네가 기슭에 이르도록 힘을 보탰다. 에구머니나, 노마님 기저귀가 젖었을 텐데! 눈을 뜨자마자 너는 후다닥 일어나서 방문을 열었다. 방에는 환자용 침대만 덩그렇게 노여 있다. 그제야 노마님이 없다는 사실을, 푹 젖은 기저귀도 없고, 먹고도 배고프다며 악을 쓸 사람도 없음을 알았다. 또 노마님이 이젠 시어머니인 것도."

여성과 사회적 약자인 주변부 인생들의 삶과 애환을 천착해온 안영실이 세 번째 소설집 '늑대가 운다'를 썼다. '화요앵담'을 펴낸 후 8년 만이다. '별의 왈츠' '늑대가 운다' '매미' '여자가 짓는 집' '뼈의 춤' '갈릴레이 갈릴레오' '벼랑 위 붉은 꽃' '바람벽에 흰 당나귀'로 구성된 이번 작품은 권력과 폭력에 의해 바깥으로 밀려나 억압받는 여성들을 돌아보게 한다.

[신간] 늑대가 운다, 가부장제 억압 속 새로운 서사로 그려낸 여성
안영실 지음/문이당/1만6천원

특히 표제작인 '늑대가 운다'는 소녀일 때 몽골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온 외국인의 안타까운 이야기다. 숙희는 불법체류자 신분을 벗기 위해 집주인 남자와 결혼했지만, 남편은 제 자식들에게 재산을 빼돌리고 통장 하나 주지 않으며 수시로 폭언을 일삼는다. 좌절한 숙희는 가출을 시도하지만 그마저도 정에 이끌려 쉽지 않다. 매일 해가 질 무렵 동네에 울려 퍼지는 늑대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할아버지가 부르던 신비로운 '희미'의 가락을 토해낸다.

즉, 이번 작품은 소외된 자들의 잃어버린 영토를 찾는 모성 담론이다. 여성의 자기 정체성 형성은 제한적으로 가능할 뿐, 결국 가부장제의 질서로 회귀하게 된다. 변형된 플롯이 나타난다 해도 결혼이 이야기의 끝을 야기하는 점에서 여성의 플롯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안영실은 이런 점에 주목해 새로운 서사로 여성의 삶을 썼다. 작품의 주인공은 대부분이 여성 화자이며, 이들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자신의 성장을 방해하는 억압적 공간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런 불행 속에서도 가족을 위해 품은 큰 사랑이 희망으로 이어줄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덕화 평택대 명예교수는 "안영실은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소설가다. 풍부한 서사성과 그에 걸맞은 문체, 그리고 논리력까지 갖추고 있다"며 "현실의 벽을 뚫기 어려운 가부장제 안에서 포용의 시선으로 자신의 꿈을 가지고 있음에도 가족을 위해 더 큰 사랑을 품은 거룩한 성모상을 통해 사회와 가정의 화합을 보여준다. 그러할 때 철없는 아버지, 집 나간 아버지, 어떠한 불행 속에서도 가정은 유토피아가 될 것"이라고 이번 소설집을 평론했다.

저자인 안영실은 199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부엌으로 난 창'으로 당선됐다. 소설집으로는 2013년 '큰 놈이 나타났다', 2016년 '화요앵담'이 있다. 2022년엔 장편소설 '설화'를 출간했다. 박인성문학상, 성호문학상, 김포문학상, 문학비단길 작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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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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