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임은영 작가 첫번째 소설집
원초적 불안·부끄러움 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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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영 소설가의 첫 소설집 '팔월의 이안류'는 삶에서 느끼는 부끄러움과 불안에 대해 응시한다. 〈게티이미지뱅크〉 |
이안류는 해안으로 밀려오던 파도가 갑자기 먼 바다 쪽으로 빠르게 되돌아가는 해류다. 일반 해류처럼 장기간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폭이 좁고 유속이 빠른 것이 특징이다. 임은영의 문장이 만들어내는 마음의 이안류는 기본적으로 부끄러움을 그 공통된 기저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 한 겹 밑바닥에는 필연적 불행에 대한 두려움이 또다른 이안류가 되어 흐른다. 전자가 맹목적 삶의 질서를 멈추어 세우는 부끄러움의 감각에 초점을 둔다면, 후자는 어떻게 해도 도저히 손쓸 수 없는 절대적 삶의 실재와 그로 인해 촉발되는 원초적 불안감에 주목한다.
2022년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블랙 잭나이프'로 당선된 임은영 소설가가 첫 소설집을 펴냈다. 신간 '팔월의 이안류'다. 블랙 잭나이프를 비롯해 오해의 기하학, 자정의 질주, 야행, 드림파크, 어디, 팔월의 이안류로 총 7개의 단편소설이 수록됐다.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삶에서 필연적으로 느끼는 '부끄러움'과 '불안'에 대해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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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영 지음/강/196쪽/1만4천원 |
일례로 첫 번째 작품 '오해의 기하학'을 이끌어가는 핵심 서사는 부끄러움의 발견이다. 누군가 뒤따라오는 것 같은 불길한 느낌, 어슬렁거리는 그림자 등 일련의 적대적 행위가 불러일으키는 불안으로 점철돼 있다. 외부의 폭력에 노출돼 있다는 불안감은 화자를 더 방어적으로 만든다. 이는 세입자 '제이'에 의해 가까스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제이는 고교 시절 화자가 학교폭력으로 고발한 적이 있었던 불어 교사 P의 사촌 동생이다. 하지만 그의 증언에 의해 제이, 사내, 나, P 모두 의도치 않은 오해로 얽힌 가해자·피해자였음이 드러나게 된다. 소설은 사소한 사건들이 의도와 관계없이 어떤 일로 이어지고, 오해의 고리에 엮여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오해의 기하학'이 '불안의 이안류'를 만들어내는 한편, 자신 역시 그 가해자였음을 깨닫게 되는 계기는 '부끄러움의 이안류'가 된다.
표제작인 '팔월의 이안류'는 불안의 이안류를 힘과 권력을 지닌 누구에게라도 찾아올 수 있는 보편적 삶의 실재로 확장한다. 화자는 행방불명된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횟집을 운영한다. '박'은 불법적인 요양원 사업을 통해 돈을 버는 인물이다.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해 권력을 행사한다. 박은 화자의 가게를 자신의 이익을 위한 장소로 활용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던 박도 취하면 바다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습관 때문에 느닷없이 이안류에 휩쓸려 사라져버리게 된다. 화자는 이안류가 모두에게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음을 거의 본능적으로 알고 있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유혹하듯 일렁이는 그 이안류의 중심을 향해 끝까지 시선을 거두지 않는 것뿐임도 명확히 자각하고 있다. 이 견고한 시선들 덕분에 '팔월의 이안류'는 현재를 견딜 수 있는 서사적 가능성을 찾아낸다.
이번 소설집에 대해 함정임 소설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임은영 소설은 파동(波動)에 기인한다. 작가는 외면하고 싶은 순간들, 돌이키지 못할 행위들, 되풀이되는 악재들에 대한 회오의 파동들을 덧없고도 순연하게 재현한다"면서 "소설이란, 아니 삶이란 시간과의 싸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듯. 시간을 타 넘으며 파동은 장면이 되고, 비로소 한 편의 서사가 된다. 작가의 성정과 태도가 소설을 감싸며 고유한 힘을 빚어내는 경우가 있는데, 임은영의 소설이 그러하다. 때로 그것은 이야기를 잘 짓는 것보다 우위에 있다"고 평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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