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식 정치에디터 |
지금이 바로 '절호의 기회'다. '87년 체제' 이후 말로만 꺼냈지 실천에 옮기지 못한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바꾸는 '개헌(改憲)' 얘기다. 여야 국회의원 출신 원로들도 지난달 "현 '탄핵 정국'이 개헌의 적기"라며 조속히 개헌 절차에 착수할 것을 국회와 정부에 촉구했다. 전직 의원 모임인 대한민국헌정회가 '선(先) 개헌 후(後) 대선'을 제안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우리는 1987년 제9차 개헌(대통령 직선제 헌법 개정안) 이후 38년째 현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무소불위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목도해 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12·3 비상계엄' 선포도 그 폐해의 연장 선상이다. 87년 체제는 국회 권한도 강화해 탄핵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오죽하면 전 세계에서 탄핵 소추가 가장 쉬운 나라로 대한민국이 꼽히겠나. 하지만, 각 정파의 이해득실에 밀려 지금껏 권력 구조 개편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개헌의 핵심은 현행 5년 임기의 대통령 중심제를 미국처럼 4년 임기에 한 번 더 할 수 있도록(중임) 하는 방안이다. 국민은 첫 임기 4년 후 중간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재평가할 수 있다. 대통령과 소속 정당은 임기 연장을 위해서라도 국민의 뜻에 역행하는 정책과 의정 활동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대통령 중임제를 담은 개헌에 손을 놓고 있다. 개헌 얘기를 꺼낼 때마다 유력 대선 주자들이 딴소리를 한 탓이다. 5년 간 독점적 권력이 눈앞에 있는데, 굳이 골치 아픈 개헌을 할 이유가 없다는 속셈의 발로다.
개헌 목소리엔 '분권형 대통령제'도 요구한다. 대통령은 외교와 국방·안보 등 '외치(外治)'를 맡고 국무총리가 '내치(內治)'를 담당해 국가권력을 나눠 갖는 방안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계엄령 선포 전 윤 대통령에게 제안했다던 '책임 총리제' 모형이다. 국정 내무와 외무가 확실히 구분돼 대통령에게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4년 연임제'와 '국가원수 지위 삭제', 국회의 '입법·인사·예산 심사권 강화' 등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민주당은 이를 2018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국민 투표로 부치려고 했으나,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때 자유한국당은 분권형 대통령제를 내세웠다.
개헌안은 이미 다양한 각도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은 여러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상태다. 관건은 정치권의 합의인데, 대통령 탄핵에 따른 조기 대선이 거론되는 작금의 정국이 딱 적절한 시기다. 이번에도 정치권, 특히 유력 대선주자들이 손사래를 치면서 외면한다면 개헌은 또다시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
대통령 권한을 나누는 일을 이제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정치권과 유력 대선주자들에게 고한다. 제10차 개헌에 한목소리를 내 달라. 특히 더불어민주당의 확실한 대권 주자인 이재명 대표가 먼저 나서 달라. 이 대표가 개헌을 들고 나온다면 과거 여러 대권 주자들과는 크게 다른 차별화를 꾀할 수도 있다. '기득권'을 버리는 모습에 '리스크'를 잠재울 수 있을지 누가 아나.
진식 정치에디터
진식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