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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칼럼] '니 죄를 니가 알렸다'

2025-01-13

글을 쓰는 직업, 매일 자문자답

'오징어 게임' 다 맞힐 수 없어

'니 죄를 알지 않느냐'는 추궁은

전 근대적 사법제도의 단편일 뿐

자제력과 인내심이 필요한 시간

[박재일 칼럼] 니 죄를 니가 알렸다
논설실장

글을 쓰는 직업상 매일 전개되는 사건 하나 하나에 자문하고 어느 정도 결론을 내려야 하는 요즘은 좀 괴로운 시대다. 명색이 논설실장이라고 계엄사태에 대해 물어올 때 나름 근사한 논거와 시야를 갖고 아는 체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솔직히 없지 않다. 내란죄는 성립하는가? 윤석열 대통령의 진짜 목적은?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탄핵하는 것은 옳은가? 1차 탄핵안에 윤 대통령이 북한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 했다(가치외교)는 사유의 정당성은? 체포에 결사항전하는 경호처의 행동은 부당한가? 이재명 혐의는 탄압인가 재판지연인가? 계엄 다음 날부터 유튜버에 몰려가 양심고백한 군장성의 진심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나? 야당 대표를 수사한 검사들을 탄핵하는 것은 올바른 입법권인가? '윤석열씨는 어차피 사형선고다 걱정마시라'는 야당의원의 발언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와 야당 의원이 수시로 의견을 교환한다는 고백은 무슨 의미인가? 이런 질문을 놓고 흔히 쓰는 반어법으로 신이 아닌 이상 내가 모든 '오징어 게임'에서 다 맞힐 수 있겠는가란 회의도 끝없이 밀려온다.

12월3일 늦은 밤, 서울 사는 아들이 "계엄이 떨어졌다, 헬기가 날아다닌다"며 카톡이 왔다. 난 "2~3시간 후면 국회에서 계엄철회 투표 결정이 있고 끝날 것이다. 걱정말라"고 답해 줬다. 사실 마땅히 그렇게 되야 한다는 당위(ought to), 그렇게 되면 좋겠다(wish)는 희망이 앞선지도 모른다. 내일 당장 논설실에 계엄군 정보장교가 나와 사설을 검열할 수도 있다는 잠깐의 공포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21세기 IT 디지털시대, '집 나간 전공의가 복귀하지 않으면 처단한다'는 포고령 문구가 웃기는 소리인지 진담인지 구분가지 않는 한 밤이었다.

사극 드라마를 접한 이들이라면 이런 단골 대사를 떠올린다. 바로 "니 죄를 니가 알렸다"란 사또의 추궁이다. 춘향전에도 나오는가. 우리가 한 사회, 한 국가를 전(前)근대적이다고 규정할 때는 중요한 잣대가 있다. 그건 사법제도이다. 근대적 사법제도 개념이 전무했던 조선시대는 한 고을의 수령, 사또는 전권을 행사했다. 지금의 시장이나 군수 역할에 지방경찰청장·검찰청장, 지방법원장, 지방국세청장 권한을 죄다 보유했다는 의미다. '무소불위의 권력'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일게다. 사또는 그러니 별 고민이 필요 없다. 끌려온 백성이 사또가 유죄라고 판단하면 유죄이고, 부인하면 자기 죄를 자기가 안다고 실토할 때까지 곤장을 치라고 하명만 하면 됐다. 탐관오리, 가렴주구가 극심했다. 정약용이 목민심서에서 고을 관리의 부패와 학정을 경고한 배경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스스로 말했듯이 법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란 예측은 돌에 새긴 명제이다. 윤 대통령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 아니면 가혹한 사법 처벌이 가중될 수 있다. 동시에 우린 근대적 사법제도의 작동이 유지되게 할 책임에서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소위 말하는 '절차적 정당성'이다. 투표 결과가 존중돼야 하려면 절차적 공정성이 전제돼야 하듯, 판결문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사법의 절차적 정당성도 확보돼야 한다. 금전 수수에 극히 민감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죄가 성립할 수 없었다는 추후의 논란을 상기해보라. 계엄의 불법성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각조각 증거돼야 하고, 불가역적인 판단이 내려져야 한다. 그건 자제력과 인내심을 요구한다. 민주주의의 덕목이기도 하다. 인내심과 지제력은 권력을 가진 쪽이 더 많이 발휘해야 한다. 작금의 대한민국 권력은 누가 쥐고 있는가? 군중인가 의회인가? 이 질문에 우린 최소한 찰나의 고민이라도 해야 한다. 나라가 위태롭기 때문이다.
박재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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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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