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더스·락앤락·쓰리세븐
징벌적 상속세에 회사 포기
4~5대 승계 포드·발렌베리
국내 상황에선 '그림의 떡'
'세금 갈라파고스' 탈피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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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 산업팀장 |
유니더스는 콘돔시장 점유율 1위 업체였다. 창업주는 부도난 회사를 인수해 국내 최대 콘돔 제조사로 키워냈다. 2001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고 2003년 중국 생산공장도 지으면서 연간 생산 가능물량인 11억개를 돌파했다. 제조 물량의 70%는 세계 50여 개국에 수출했다. 이런 강소기업이 5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 부담 때문에 경영권을 사모펀드에 넘겼다. 이후 콘돔 제작업체는 대부업과 바이오사업, NFT, 연예매니지먼트 등 여러 사업을 전전하고 있다. 회사명도 바이오제네틱스, 경남바이오파마, 블루베리NFT, 블레이드엔터테인먼트에서 변경됐다가 최근에는 빌리언스로 바뀌는 등 '글로벌 콘돔제조업체'라는 명성은 오간 데 없어졌다.
반면 미국 포드자동차, 스웨덴 발렌베리, 네덜란드 하이네켄은 몇 대에 걸쳐 가업을 승계한 장수기업들이다. 포드는 4대에 걸친 경영세습을 통해 창업주 증손자 윌리엄 클레이 포드 주니어가 전기자동차 시대를 지휘하고 있다.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가 1856년 설립한 발렌베리는 5대에 걸친 가업승계를 일궈냈다. 1873년 네달란드 암스테르담에 처음 등장한 맥주업체 하이네켄은 여전히 창업주의 증손녀가 경영하고 있다.
다른 지역과 상이한 모습으로 진화하면 변화에 뒤처지는 것을 두고 '갈라파고스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갈라파고스 증후군은 독자적인 발전도 외부환경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면 그 특징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시장을 호령했던 일본 가전산업이 국제 환경을 외면한 채 특정 기술에만 집착하다가 경쟁력이 약화돼 세계 시장에서 '1위 자리'를 내준 것이 대표적인 예다.
우리나라에도 세계 흐름과는 역행하면서 갈라파고스 증후군을 앓고 있는 분야가 있다. 기업 상속세가 그것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최고 수준이다. 한국의 상속 최고세율은 50%로 할증세율이 적용된다면 최대 60%까지 오른다. OECD 평균인 26%보다 약 2배 수준이다.
다른 국가의 경우 상속세 부담을 낮추거나 없애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한국은 20여 년째 제자리걸음이다. 60% 상속세율에 따라 세금을 납부하면 지분율이 급감해 경영권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다소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상속세율을 산술적으로 계산해 보자. 지분 100%를 물려받은 기업인이 상속세 60%를 내면 지분은 40%가 된다. 이 지분을 다음 세대에서는 최초 지분의 16%만 남는다. 한번 더해 3대째 상속하면 지분은 불과 6.4%로 급감한다. 앞서 언급한 유니더스뿐만 아니라 밀폐용기 '락앤락', 손톱깎이 세계 1위 '쓰리세븐' 등도 상속세 부담에 기업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더 이상 우리나라가 세금의 갈라파고스가 되어서는 안된다. 루이 14세 때 프랑스 경제를 전성기로 이끈 재무장관 콜베르가 '거위가 비명을 덜 지르도록 하면서 최대한 많은 깃털을 뽑는 것'이라는 이른바 '거위깃털 뽑기'를 세금 징수의 원칙으로 꼽은 지 수백 년 지났지만 우리나라는 오히려 거꾸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감당하기 힘든 상속세에 국내 우량 기업이 팔려나가는 현실에서 100년, 200년 장수기업을 찾는 것은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가 피어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홍석천 산업팀장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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