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루냐 문학의 거장 카브레
작품 세계 집약한 단편소설집
독창적인 이야기 기법 돋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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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메 카브레의 단편집 '겨울 여행'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됐다. 인간의 운명이 교차하는 열네 편의 이야기가 담겼다. 오스트리아 빈의 중앙묘지 내 '음악가 묘지'에 자리한 모차르트 기념비(가운데)와 베토벤(왼쪽)·슈베르트 묘소. 〈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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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메 카브레 지음/권가람 옮김/민음사/308쪽/1만5천원 |
"인생은 하나의 경로도 목적지도 아닌 여행이며, 우리가 사라질 때는 그 위치가 어디든 우리는 언제나 여행의 중간 지점에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겨울 여행' 中)
비 내리는 겨울날, 중년의 남성 졸탄 베셀레니는 오스트리아 빈의 중앙묘지를 찾는다.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 위대한 음악가들이 잠든 곳이다. 그리고 25년 전 사랑했던 마르게리타와 재회를 약속한 장소이기도 하다. 25년 전 그는 피아노를 배우는 청년이었고, 마르게리타는 성악 공부를 위해 빈에 머물고 있었다. 두 사람이 만난 지 28일 만에 마르게리타는 돌연 이별을 선언했다. 사실 그녀는 공부를 위해 빈에 온 것이 아니었다. 베네치아에서 예정된 결혼을 앞두고 확신이 서지 않아 잠시 떠나온 상태였던 것. 베셀레니는 함께할 것을 애원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25년 뒤 오늘 이곳에서 다시 만나자"고 간청했다. 마르게리타는 이를 수락한 채 고향으로 돌아갔다. 약속한 날이 찾아왔다. 베셀레니는 마르게리타와의 재회를 꿈꾸며 중앙묘지를 찾았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기대했던 만남이 아니라 또다른 이별이었다.
카탈루냐 문학의 거장 자우메 카브레의 단편집 '겨울 여행'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됐다. 카브레의 작품 세계를 집약적으로 담아낸 단편집이다. 시공간, 인간의 운명이 교차하는 열네 편의 이야기가 하나의 교향곡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카브레는 인간 내면을 탐구하는 문체와 독창적인 서사로 현대 문학에서 선구적인 위치를 차지한 작가다. 1947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 '엉망진창 환상소설'을 발표하며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악의 연대기를 추적하는 대작 '나는 고백한다'로 세계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거대 서사가 사라져가는 현대 문학의 흐름 속에서 권력과 인간 조건의 관계, 역사 속 악의 구체성, 그 속에서 예술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단편집에는 표제작을 비롯해 △사후 작품 △손 안의 희망 △먼지 △보석 같은 눈 △나는 기억한다 △흔적 등 작품 14편이 수록됐다. 각 단편은 음악과 예술, 철학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구원, 예술의 의미를 탐구한다. 각각 독립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세밀한 장치를 통해 서로 연결된다. 이야기의 교차점에서 인물들이 비밀을 깨닫는 카브레만의 독창적인 서사 기법이 돋보인다.
카브레는 당초 작품집의 제목을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에서 따왔다. 민음사는 "카브레의 작품 제목은 슈베르트 작품 제목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는 작품의 핵심을 담고 있기에 '겨울 여행'으로 직역해 옮겼다"고 설명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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