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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대구 달서구청장) |
화사한 매화꽃이 겨울을 견딘 자연을 위로해 주고 있다. 그러나 분열된 국민의 심중은 얼음동굴이다. 지금 겪는 중앙정치권발 국가 위기에 대한 방파제는 바로 풀뿌리 민주주의 지방이다. 그럼에도 번져가는 지방소멸의 위협은 지방분권의 봄꽃을 대망하고 있다. 주민 생활과 밀접히 관련된 일을 주민 스스로가 결정하는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와 지방분권에 기반한다.
우리의 지방자치는 지방자치법 제정으로 출발(1949년)했다가 군사 정변으로 정지(1961년)되고 지방의회 부활(1991년) 그리고 민선 자치단체장 선출(1995년)로 전면 시행되었다. 올해로 자치단체장을 직접 뽑는 민선 자치제 시행 30주년을 맞지만 허술함이 가득하다. 정부는 2023년 '지방자치의 날'과 '국가균형발전의 날'을 '지방자치 및 균형발전의 날(10.29)'로 통합도 하지만 지방자치의 현장은 광대 옷차림이다.
지방자치의 자율성·독자성을 뜻하는 우리의 자치입법권은 선진국과는 달리 조례제정의 범위를 '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이나 벌칙을 정할 때에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는 지방자치법 제28조 단서 조항에 박제하고 있다. 복합 위기와 변화가 폭풍으로 몰려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지역 실정에 맞는 규범을 정립하고 지역 문제를 스스로 결정 집행할 수 있는 범위의 지방정부적 입법 자율성이 절실하지만, 단체 수준의 자치성에 머물고 있다.
국세·지방세 비중이 75.4 : 24.6으로 지방의 필요 재원이 중앙에 의존되는 상황에서, 최근 자치구 주요 재원인 부동산교부세 급감의 재정 압박에도 지방교부세금 배분 방식은 여전히 모호하다. 전국 기초지자체 평균 재정자립도 18.83%는 전국 최대 지방 공단을 품는 인구 54만 달서구의 재정자립도 18.12%에서 보듯, 재정재량권은 후퇴되고 있다. 지자체 재정력 강화가 국정과제라면서도 기초연금 등 국가정책은 물론 고교 교육비까지 지방에 분담시켜, 지자체는 점증되는 복지비 지출(달서구 72%)에 손발이 묶이고 있다.
최근 인건비·자재비 폭등에 따른 재개발·재건축 관련 쏟아지는 집단 민원 집회로 지자체는 몸살을 앓는다. 허위 악성 현수막이 둘러싸고 스피커 고음에 주민들이 몸서리쳐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집회 시위법 앞에 옥외광고물법이나 도로법은 종이 효력임을 아는 시위자의 위세는 가관이다. 지능화된 악성 집회 자유는 무분별 허용되면서 선량한 다수 주민의 들끓는 한숨은 무시되는 것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현주소이다.
주민 분열과 혐오를 자극하는 정치 현수막이 거리를 점령해도 행정은 지켜만 봐야 한다. 소통의 시대에 구정 홍보용으로 발행하는 소식지, SNS에 지자체 사업계획이나 실적게재가 연 4회 초과했다며 선관위에 조사받는 것이 현실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기초지자체가 드라이브스루 검사 아이디어, 주민 봉사활동 유도와 단합된 주인의식을 이끌며 위기 극복을 선도했다. 지방의 재발견이라는 당시 기대감과는 달리 민선 지방자치 30년 해엔 풀뿌리 지방자치에 대한 성찰마저 보이지 않는다. 급히 추진되는 광역시도 행정통합 움직임에서도 기초지자체의 위상과 자치권에 대한 논의는 관심 밖이다.
풀뿌리 자치권 강화 원칙에 따라 지방이 많은 자율성을 가지고 중앙, 광역 및 기초 자치단체 간 유기적 협력을 할 때 지방자치는 국가 성장과 경쟁력의 촉진 인자가 될 것이다. 그 근본 답은 지방분권적 개헌에 있을지라도, 풀뿌리 민주주의 30년의 무기력한 현장은 사회의 관심을 갈급하고 있다. 나라의 주인이 주민이란 분명한 인식만이라도.
이태훈(대구 달서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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