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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작가를 이해하는 나침반

2025-03-10

[문화산책] 작가를 이해하는 나침반
박관호<갤러리제이원 실장>

신진 작가들의 첫 개인전은 작가만 기대하는 게 아니다. 기획자인 나도 꽤 기대가 된다. 이들 중에 정말 멋진 작가가 나오지 않을까? 이 작업들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까? 이들의 서사는 또 어떻게 시작될까? 그런 상상을 하면서 작가와 함께 첫 장을 써 내려가는 과정은 갤러리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런데, 즐겁기만 한 일은 또 아니다. 어떻게 해야 작가를 잘 보여줄 수 있을까. 이 전시가 멋지게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이 이 작업을 보고 공감할 수 있으려면 나는 어떤 이야기를 건네야 할까. 그리고 작품도 잘 팔려야 한다. 그래야 작가도 힘이 날 테니까.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머릿속이 조용할 틈이 없다. 전시 준비 내내 '이게 맞나?' 싶은 순간들이 따라붙는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전에 기획자는 누구보다 작가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가노트를 받으면 계속 펼쳐본다. 작품도 다시 본다. 작가의 SNS에 남겨둔 글들도 찾아본다. 작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보려고 한다. 그다음은 결국 대화다. 한 번, 두 번, 계속 이야기를 나눈다. 이 사람이 왜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지, 어떤 걸 고민하고 있는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어떤 작가는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어떤 작가는 단어 몇 개만 남긴다. 아예 글을 쓰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작업 과정에서 감정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그림과 달리, 작가노트는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기에 더 적나라한 자기 노출이 될 수도 있다.

현대미술에서 작가노트는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제는 작가의 생각과 태도, 작가라는 사람 자체의 매력이 전시의 일부가 되어버린 시대니까. 또한 작품을 어렵게 느끼는 관객에게 조금 더 다가가게 하는 문턱을 낮춰주는 역할도 한다. 나는 작가노트를 작가의 세계를 여행할 때 들고 가는 나침반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소통을 위한 두 번째 작품이라고도 생각한다.

예전에는 작가노트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꼭 그렇지 않다. 글로 풀어내지 못하더라도 작품으로 더 잘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말하기 어려운 것들이 그림으로 전달될 때가 있다. 어떤 감정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냥 느껴진다. 그럴 땐 굳이 글을 억지로 쓰라고 하지 않는다. 일단 계속 작업을 해보라고 한다. 작업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작업들이 작가노트를 대신 써줄 거라 믿는다.

예술은 그 자체로 충분할 때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되기를 바란다.

박관호<갤러리제이원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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