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회장, 백악관서 루이지애나 제철소 신설 등 대미투자 계획 밝혀
대한항공도 48조 보잉 제품 구매 계획 발표
韓기업들 ‘트럼프발 관세폭풍’ 돌파나서

백악관서 대미투자 발표하는 정의선 현대차 회장. 연합뉴스

현대차그룹 신규 대미 투자 세부계획. <현대차그룹 뉴스룸 캡쳐>
현대자동차그룹이 오는 2028년까지 미국에 총액 210억 달러(약 31조원) 규모의 투자를 24일(현지시간) 발표했다. 관세를 무기로 내세워 미국 내 제조업을 재건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에 현대차가 대규모 투자로 응답한 것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날 오후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재한 발표 행사에서 “향후 4년간 (미국 내) 210억 달러 규모의 추가 신규 투자를 기쁜 마음으로 발표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새롭게 발표한 대미 투자계획은 트럼프 집권 2기 출범 이후 한국 기업 가운데 첫 번째로, 한국 대미 수출 기업들의 트럼프 관세 대응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서 車뿐만 아니라 부품·철강, 미래·에너지 산업도 키운다
현대차그룹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앞으로 4년간 집행할 21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의 세부 내역도 공개했다. 자동차 생산 분야 86억 달러, 부품·물류·철강 분야 61억 달러, 미래 산업 및 에너지 분야 63억 달러 등 세부 내역을 밝혔다.
자동차 생산 분야와 관련해서 정 회장은 “이번 주 조지아주에 80억 달러 투자 규모의 새 공장을 열게 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이 공장을 통해 8천5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현대차그룹은 오는 26일 준공식을 갖는 미국 내 '3호 공장'인 조지아주 서배너 소재 '현대차그룹 메타 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생산 역량을 20만대 추가 증설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공장의 현재 생산 능력은 연간 30만대 규모인데, 이를 50만 대로 확대해 현대차 앨라배마공장(2004년 가동 개시·36만대), 기아차 조지아공장(2010년 가동 개시·34만대)과 함께 연간 총 120만대 생산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목표다.
현대차그룹은 또 미래 산업 및 에너지 분야에서 자율주행, 로봇, 인공지능(AI), 미래항공모빌리티(AAM) 등 미래 신기술과 관련한 미국 유수의 기업과 협력을 늘리고, 현대차그룹 미국 현지 법인인 보스턴 다이내믹스, 슈퍼널, 모셔널 등의 사업화에 속도를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 회장은 “이 모든 노력은 우리의 미국내 공급망 현지화를 가속화할 것"이라면서 “현대차그룹은 미국 산업의 미래에 더 강력한 파트너가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차그룹 미국내 첨단 제조시설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을 초청한다고 밝히자 트럼프 대통령이 “오케이"라며 화답하기도 했다.
정회장의 발표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행사 모두발언에서 이번 현대차의 투자 계획 발표를 자신의 '관세 드라이브' 성과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대차가 곧 매년 100만대 이상의 미국산 자동차를 생산할 예정"이라며 “이 투자는 관세가 매우 강력하게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동차(자동차 생산 설비)가 전례없는 수준으로 이 나라로 들어오고 있다"며 “다른 것도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대는 미국에서 철강을 생산하고 미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하게 되며, 그 결과 관세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對美 수출 기업 트럼프 관세 본격 대응
현대차 투자와 더불어 앞서 대한항공도 48조원 규모의 미국 여객기·엔진 구매 계획을 발표했다. 민간 기업들의 이같은 행보는 현대차를 포함한 미국 수출 국내 기업들의 트럼프발(發) 관세 대응책 중 하나로 풀이되고 있다.
미국은 내달 2일 각국 대미 관세율과 비관세 장벽을 감안해 책정하는 '상호관세'를 발표할 예정인데, 기업들의 신규 대미 투자 발표는 '관세 전쟁'에 방아쇠를 당긴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인식을 바꿔놓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21일 열린 대한항공과 보잉 및 GE에어로스페이스 간 '3사 협력 강화 서명식'에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직접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미국의 관세 전쟁 기획에 깊숙이 관여하는 하워드 장관이 해외 기업의 자국 상품 구매 행사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은 물가 상승 등 자국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을 상대로 무차별적 관세 전쟁에 나선 상황이다. 이는 심각한 무역 적자 해소와 미국 내 투자 유인을 위한 자구책 성격이 강하다.
통상 관계자와 업계는 한국기업의 이같은 대규모 투자 발표가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에 관한 인식 전반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미국도 한국 기업들의 투자가 실제 자국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의미를 두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이런 움직임이 다른 기업들로도 이어진다면 미국도 (대한국 관세 정책) 방향에 수정을 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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