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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웅기자〈사회1팀〉 |
경북을 집어삼키고 있는 화마는 바람을 탄 불똥이 이리저리 튀어 박히면서 계속 덩치를 키우고 있다. '다 꺼졌나' 싶은 불이 돌풍을 만나 되살아나고, 그 바람에 실려 허공을 떠다니다 떨어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비화의 무서운 점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잠깐 한눈을 팔다가 대피가 늦어지면 사방이 불길로 휩싸여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이 때문에 이번 경북 산불에서도 진화대원들이 진화 작업 중 급히 철수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당장 기댈 구석은 비 소식이다. 제주에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 전국으로 비를 뿌릴 전망이다. 예상 강수량이 적어 진화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이번 만큼은 예보가 틀려 강산을 흠뻑 적실 정도의 많은 비가 내리길 소망할 뿐이다.
국어사전은 비화의 또 다른 뜻을 '어떠한 일의 영향이 직접 관계가 없는 다른 데에까지 번짐'으로 설명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임박한 가운데 산불 재난 상황을 둘러싼 각종 음모론이 퍼지는 모습은 마치 이 도깨비불과 같다.
지난 23일 한 진보성향 유튜버는 '김건희, 산불로 호마의식'이란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호마는 인도계 종교에서 행하는 불을 활용한 의식이다.
한 누리꾼은 댓글을 통해 "음모론이 아니다. 호마의식을 하고도 남는다"며 동조했다. 또 다른 누리꾼들도 "전쟁도 준비한 사람들이 무슨 짓을 못하겠나" 등 허구적 상상에 빠진 모습이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선 이번 재난이 '간첩소행', 심지어 중국인이 국가 중요시설을 노리고 조직적으로 산불을 낸다는 주장까지 한다.
보수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좌파 세력이 대통령 탄핵 기각 이후에 사회 혼란을 조장하기 위해 이런 짓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과거 중국인이 국내서 방화를 시도한 사건 영상을 재소환해 마치 이번 일과 연관된 것처럼 대중을 현혹하기도 한다.
수십명의 사망자, 수천명의 이재민이 발생 중인 국가재난이다. 이런 때 서로 보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 음모론을 생산하고 이용하는 현상이 우리 사회 갈등의 위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과열된 갈등을 식힐 봄비는 하늘이 아닌 바로 우리 손에 달렸다.최시웅기자〈사회1팀〉

최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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