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당시 느꼈던 우울감
분열된 사회가 더 큰 문제
'내전' 치달은 한국 사회
정치권이 직접 자성해야
승복 당연 차분히 기다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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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서울본부 정치팀장 |
그럼에도 언젠가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는 있었다. 2년여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백신의 개발과 치명률을 낮춘 변이는 그 기대를 현실로 만들어줬다. 우리의 일상을 앗아갔던 바이러스는 이제 감기같이 공존하게 됐다.
5년 만에 또다시 일상의 회복을 바란다. 계엄 사태 전으로 말이다. 갑자기 코로나를 꺼내든 이유는 그때의 사회 분위기와 지금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분열된 사회'가 우리를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보수·우파와 빠른 탄핵을 촉구하는 진보·좌파의 대결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열을 봉합할 수 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정말 무기력하고 무섭다.
정치 기사를 작성할 때 '극한의 대립' 또는 '강 대 강 대치' 등을 언급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보다 더한 '사생결단' 같은 표현들이 쓰인다.
정확하게는 양 진영 간 '대치'가 아닌 '전쟁'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상대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일도 생긴다. 사이버상 댓글이나 커뮤니티 등에서 오가는 말들은 더 심하다. 총이나 칼만 없을 뿐이지 '내전'이란 말이 딱 맞다.
주변에서 최근 한 커플은 탄핵 찬반으로 나뉘어 다투다 파혼을 하고, 탄핵 반대 집회에 나가는 부모님과 절연한 자식들도 있다. 자영업자지만 주말마다 서울 또는 전국 각 지역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다 보니 생업에 지장이 있는 분도 있다. 웹소설 같지만 2025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래서 최근까지 '개헌'에 아주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헌법 체제의 큰 틀을 바꿔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죄송하지만 개헌도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 같다.
광장에 나온 시민 또는 양 극단의 지지자들에게 개헌이 과연 들리기나 하겠는가? 본인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부정이나 농단이라는 표현을 정치지도자가 먼저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음모론이 쏟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평범한 시민들에 광장에 나오지 말라는 표현이 귀에 들어오겠나.
서로 '승복'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란 생각이 들지 않나. 승복하지 않으면? 국민저항권이 무엇이기에 대체 '직접 민주주의'를 벗어난 광장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모든 것을 당원이나 극성 지지자가 판단하면 나머지 평범한 국민들은 어찌하란 말인가? 제발 부탁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자기 진영의 극성 지지자들을, 코로나19보다 무서운 '탄핵'에 빠진 대한민국을 설득해달라. 차분하게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자고 말이다. 언제까지 아스팔트에서 시민들이 나서야 하나.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승복을 요구할 것도 아니다. 집회를 열지 말고, 릴레이 시위도 하지 말고 차라리 화재 봉사활동을 하라. 내전으로 치달은 열기를 식혀야 할 책임과 의무도 정치권에 있다.
서로 입장을 이해하고 하나씩 양보하며 합의점을 찾는 아름다운 정치는 당분간 불가능한 것을 너무 잘 안다. 설득과 양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남의 굴복을 바랄 순 없다. 그러니 제발 먼저 화나 있는 민심을 달래기라도 해달라. 지금은 서로 집회를 열고 릴레이 시위나 단식 등 극한 여론전을 할 때가 아니다. 그래야 개헌이든 무엇이든 할 수 있다.정재훈 서울본부 정치팀장

정재훈
서울본부 선임기자 정재훈입니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을 출입하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