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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지속가능한 성장모델 '도넛 경제학'. |
조금 더 쉽게 얘기해보자. 무한히 경제를 성장시키는 게 아니라, 딱 좋은 선에서 균형을 맞추자는 것이 핵심이다. 이 개념은 '도넛'으로 설명된다. 크기가 다른 두 원을 중심점을 같게 해서 그려보자. '◎' 모양이 나오면 된다. 이 두 고리는 인간과 세상을 위해 지켜야 할 선이다.
안쪽 고리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사회적 기초를 의미한다. 식량, 제대로 된 주거, 교육, 사회적 지원망 등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와 관련된 것들이다. 이 고리 안쪽 영역(부족)에 들어서면 기아, 문맹 같이 심각한 인간성 박탈 사태가 벌어진다. 영역 안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선 성 평등, 공정, 정치적 발언권 등이 지켜져야 한다.
반면 바깥쪽 고리는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생태적 한계다. 기후 변화, 생물 다양성 손실, 대기오염 등이 이에 포함된다. 이 한계선 밖으로 넘어갈 경우(과잉) 생태적 위기가 발생한다. 지구를 압박하지 말아야 이 선을 넘지 않을 수 있다.
이 두 경계 사이의 공간, '도넛' 구간이 인류가 번영할 수 있는 안전하고 정의로운 세계다. 이 세계는 인간성의 박탈이 없는 최소한의 사회적 기초와 생태적 한계선 사이로 인간을 위한 최적의 공간이다. 도넛 경제 모델은 이 구간을 유지하며 발전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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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암스테르담 도넛 데이' 행사. 암스테르담 응용과학대(AUAS) 학생들이 '도넛 스쿨'에 참여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2050년까지 완전 순환경제 전환 선언
창안자 레이워스와 공동 작업
식품 ~ 주거 순환경제공급 추진
도넛 경제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생각하는 사회적 기업가, 정치 활동가, 환경 운동가들에게 호응을 얻으며 국제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안자 레이워스는 2020년 자신의 아이디어를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도넛 경제학 액션 랩(DEAL)'을 열었다. 이후 DEAL을 중심으로 세계 40개 이상의 도시에서 도넛 경제 모델을 적용하는 '도넛 도시' 실험이 이뤄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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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암스테르담 도넛 데이'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이 도넛을 직접 그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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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경기 용인 느티나무도서관을 찾은 지역 주민들이 DEAL의 '글로벌 도넛 데이' 행사에 참여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느티나무도서관 제공> |
경북도의회 조례 의결 '도넛도시' 첫발
한국에서도 도넛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경기 용인 느티나무도서관은 지난해 11월 DEAL의 '글로벌 도넛 데이' 행사에 참여했다. 글로벌 도넛 데이는 'GDP 성장 신화가 우리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온 세계의 지자체, 기관, 단체, 개인들이 행동의 전환 및 체계의 변화를 모색하고 서로를 연결하는 온라인 행사다. 자폐아동가족 자조모임, 동네 자원순환거점, 도넛 경제 보드게임을 개발 중인 단체 등 용인지역 커뮤니티와 주민들의 활동을 소개했다.
관련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서울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도넛 도시 포럼'이 열렸다. 관련 연구를 진행한 배보람 녹색전환연구소 지역전환 팀장은 "국내에 도넛 모델이 적용·확산되려면, 지역의 비전을 제시하고 종합적인 프레임워크를 수용할 수 있는 지역 주체들과 지역의 다양한 정책들을 도넛 모델의 틀 안에 통합할 수 있는 행정의 참여와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주거와 자산, 교통과 노동시장 등 도넛을 구성하는 영역 간 연계성과 지역의 특성이 데이터와 지표에 충분히 반영되기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근 경북도의회에서도 '경북도 자원순환 기본 조례 전부개정조례안'이 발의됐고, 지난 20일 최종 의결됐다. 자원 활용 전 과정에서 효율성을 높이고, 폐기물 발생을 줄이는 순환경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제안됐다. △조례명을 '경북도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 조례'로 변경 △사업자 대상 행정·재정·기술적 지원 △순환경제 특별회계 설치 △폐기물처분부담금 징수·교부금 운영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렇듯 도넛 경제학은 지속가능성과 균형을 강조하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 해법이 될지는 미지수다. 지금 우리 경제는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앞으로 어떤 선택이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더 많은 논의와 실천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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