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갓진 술집에서 얼굴 붉히며
통일 열변을 토해내는 지성들
미지근한 난 동화되지 못하고
도피의 감정이 그 단어로부터
나를 더욱더 멀어지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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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광훈 소설가 |
물론 그 도시의 도심의 형태라든가 시민들의 표정은 잘 그려지지 않지만 왠지 티브이에서나 만날 수 있는 연예인들처럼 다 위장된 상품 같아 보이고 가끔씩 엉성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 같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난 마치 낯선 버라이어티쇼를 대하듯 차디찬 미소를 한번 머금어 본 다음 딱 오프(off)의 위치로 상상의 스위치를 내려 버린다. 이렇게 북한이라는 나라는 이제 나의 추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신비롭고, 오래가지 않는, 레고시티 같은 나라다. 그 허상 같은 이미지는 콜라 한 잔에, 햄버거 하나에 너무나 쉽게 허물어져 버린다.
난 요즘도 한갓진 술집이나 카페 같은 곳에서 '통일'이란 엄청난 무게의 단어와 씨름하는 멋진 지성들을 만나곤 한다. 얼굴을 붉히며 열변을 토해내는 그들의 진지한 모습에 나의 가슴은 점점 달아오른다. 하지만 미지근한 가슴, 그것뿐이다. 난 그 분위기에 쉽게 동화되지 못한다.
"모르겠어. 하지만… 나도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어."
괜찮은 말이다. 허나 그들에겐 큰 상처가 된다. 난 정말 그들에게 불편한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그런 감정이, 그런 도피의 감정이 나로 하여금 통일이란 단어로부터 더욱더 멀어지게 만든다.
내가 스물다섯 살 되던 해 여름이었다.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란 노래를 들으며 소설원고의 마지막 부분을 수정하고 있을 때, 소방공무원이었던 한 친구로부터 김일성의 사망소식을 전해 들었다. 난 곧바로 거실로 달려가 티브이를 켰다. 티브이 화면엔 그의 말대로 김일성의 대형 초상화와 더불어 그의 과거 행적과 근황이 아나운서의 흥분에 찬 멘트와 함께 뉴스속보 형식으로 방영되고 있었다.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
순간, 떠오른 문구였다. 정말, 나의 머릿속에서 왜 그런 지저분한 구호가 떠올랐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그 구호만큼 나를 압도했던 것은 없었을 것이다. 정말 때려잡아야 할 것은 김일성밖에 없었으며, 무찌를 것은 공산당밖에 없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 외의 것이 있었다면, 우리 집 부엌과 마당 사이를 오가며 고양이 묘군과 생사를 다투던 쥐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리라…. 그래, 그 시절 난 그를 저 하수구나 시궁창 같은 곳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쥐, 아마 그 정도의 더럽고 추악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구호는 학년이 바뀌어도 변함이 없었다. 다른 것이 있었다면 선생님이 30대에서 50대로 바뀌었다는 것, 그리고 비난의 단어들이 좀 더 거칠어졌다는 것뿐이었다. 여전히 때려 잡아야 할 김일성은 호시탐탐 우리의 생명을 노리는 혹 달린 괴물로 묘사되고 있었고, 우리는 초현실주의적인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난 공산당이 싫어요!'와 같은 의식화된 문장들을 갈색 노트 위에 휘갈겨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를 때려잡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때까지의 인생에 대해 꽤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날 오후 일정은 김일성의 최후와 함께 막을 내렸다. 행여 그가 부활하지나 않을까 하는 엉뚱한 기우. 하지만 다음날도, 그 다음 날에도 그의 부활소식은 영영 전해지지 않았다.
우광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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