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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 난 공산당이 싫어요

2025-04-03

한갓진 술집에서 얼굴 붉히며

통일 열변을 토해내는 지성들

미지근한 난 동화되지 못하고

도피의 감정이 그 단어로부터

나를 더욱더 멀어지게 만들어

[더 나은 세상] 난 공산당이 싫어요
우광훈 소설가
나는 요즘 우리나라 북쪽에 위치한 한 이상한 나라를 잊고 지낼 때가 많다. 아니, 솔직히 말해 평양국제마라톤이나 북한 외국인관광재개와 같은 뉴스를 단신으로 접할 때면 사진첩을 뒤적이듯 개성, 평양, 신의주와 같은 낯선 도시들의 모습을 잠시 머릿속에 떠올려 보는 정도라고나 할까?

물론 그 도시의 도심의 형태라든가 시민들의 표정은 잘 그려지지 않지만 왠지 티브이에서나 만날 수 있는 연예인들처럼 다 위장된 상품 같아 보이고 가끔씩 엉성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 같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난 마치 낯선 버라이어티쇼를 대하듯 차디찬 미소를 한번 머금어 본 다음 딱 오프(off)의 위치로 상상의 스위치를 내려 버린다. 이렇게 북한이라는 나라는 이제 나의 추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신비롭고, 오래가지 않는, 레고시티 같은 나라다. 그 허상 같은 이미지는 콜라 한 잔에, 햄버거 하나에 너무나 쉽게 허물어져 버린다.

난 요즘도 한갓진 술집이나 카페 같은 곳에서 '통일'이란 엄청난 무게의 단어와 씨름하는 멋진 지성들을 만나곤 한다. 얼굴을 붉히며 열변을 토해내는 그들의 진지한 모습에 나의 가슴은 점점 달아오른다. 하지만 미지근한 가슴, 그것뿐이다. 난 그 분위기에 쉽게 동화되지 못한다.

"모르겠어. 하지만… 나도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어."

괜찮은 말이다. 허나 그들에겐 큰 상처가 된다. 난 정말 그들에게 불편한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그런 감정이, 그런 도피의 감정이 나로 하여금 통일이란 단어로부터 더욱더 멀어지게 만든다.

내가 스물다섯 살 되던 해 여름이었다.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란 노래를 들으며 소설원고의 마지막 부분을 수정하고 있을 때, 소방공무원이었던 한 친구로부터 김일성의 사망소식을 전해 들었다. 난 곧바로 거실로 달려가 티브이를 켰다. 티브이 화면엔 그의 말대로 김일성의 대형 초상화와 더불어 그의 과거 행적과 근황이 아나운서의 흥분에 찬 멘트와 함께 뉴스속보 형식으로 방영되고 있었다.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

순간, 떠오른 문구였다. 정말, 나의 머릿속에서 왜 그런 지저분한 구호가 떠올랐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그 구호만큼 나를 압도했던 것은 없었을 것이다. 정말 때려잡아야 할 것은 김일성밖에 없었으며, 무찌를 것은 공산당밖에 없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 외의 것이 있었다면, 우리 집 부엌과 마당 사이를 오가며 고양이 묘군과 생사를 다투던 쥐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리라…. 그래, 그 시절 난 그를 저 하수구나 시궁창 같은 곳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쥐, 아마 그 정도의 더럽고 추악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구호는 학년이 바뀌어도 변함이 없었다. 다른 것이 있었다면 선생님이 30대에서 50대로 바뀌었다는 것, 그리고 비난의 단어들이 좀 더 거칠어졌다는 것뿐이었다. 여전히 때려 잡아야 할 김일성은 호시탐탐 우리의 생명을 노리는 혹 달린 괴물로 묘사되고 있었고, 우리는 초현실주의적인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난 공산당이 싫어요!'와 같은 의식화된 문장들을 갈색 노트 위에 휘갈겨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를 때려잡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때까지의 인생에 대해 꽤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날 오후 일정은 김일성의 최후와 함께 막을 내렸다. 행여 그가 부활하지나 않을까 하는 엉뚱한 기우. 하지만 다음날도, 그 다음 날에도 그의 부활소식은 영영 전해지지 않았다.

우광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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