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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호<갤러리제이원 실장> |
공공 영역의 움직임도 흥미롭다. 미술은행이나 정부미술은행 같은 기관들이 해마다 예산을 들여 작가들의 작품을 사들이는데, 요즘은 신진 작가들, 아직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구입하고 있다고 한다. 이건 단순한 '소장'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을 미리 지지하는 선택처럼 느껴진다. "이 작가, 앞으로 잘 될 거야" 하고 믿고 한 표 던지는 느낌이랄까. 전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달라지고 있다.
팬데믹으로 한동안 미술관이 한산했는데, 이젠 다시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다. 특히 20~30대 젊은 관람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이들은 예전처럼 조용히 작품만 보는 관람객이 아니다. 전시장을 '경험의 공간'으로 여긴다. 사진도 찍고, SNS에 공유하고,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전시를 즐긴다. 그래서 요즘 전시에서는 단순히 잘 그린 그림보다, 이야기와 감정이 느껴지는 전시가 더 반응이 좋다.
하지만 한국 미술이 해외에서 얼마나 알려져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몇몇 작가들은 해외 아트페어나 갤러리에서 주목을 받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세계 미술시장 안에서의 입지는 여전히 작다. 해외에서는 작가의 경력, 전시 이력, 소장처 같은 정보가 투명하게 정리되어 있어야 관심을 받는다. 우리도 이제는 "느낌이 좋아서"가 아니라, "왜 좋은가"를 말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할 때다.
이 보고서를 읽으면서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건, 미술시장이 '속도를 줄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너무 빠르게 달려오던 시장이 이제는 방향을 다시 살피고 있는 것 같다. 누가 더 빨리, 더 많이 파느냐가 아니라, 어떤 작가를 오래 지켜볼 수 있느냐를 고민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은 나처럼 미술을 좋아하고, 작가들을 소개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꽤 반가운 변화다. 작품을 산다는 건 결국 그 작가의 세계를 사는 일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 고민, 감정까지 함께 느끼는 일이다. 그런 마음으로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미술시장도 더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박관호<갤러리제이원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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