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인연을 맺으며 네덜란드 화훼산업을 보고 싶었다. K대학 화훼수출농업기술지원단은 주로 국내 꽃 재배 농장을 돌며 컨설팅하지만, 가끔은 해외 화훼산업 현장을 가는데, 네덜란드로 가게 되었다. 먼저 리시안서스 육묘회사에 들렀다. LED 조명 아래 파종부터 출하까지 전 과정이 자동화 시스템에 의해 이뤄진다. 육묘상자에 생육이 나쁜 모종은 천장에 매달린 로봇이 인식해서 뽑아내고 좋은 모종을 채우는 작업이 마치 공산품 제조 공장 같다.
외국으로 시집가는 모종 한 포기를 뽑아보았다. 뿌리가 포트 밑바닥에 닿을 듯 말 듯 날카로운 송곳같이 튼실했다. 재배 포장에 심으면 바로 땅속을 파고들어 낯을 가리지 않고 활착이 된다는 회사 대표의 차분한 설명에 신뢰가 간다.
국내 육묘회사에서 모종을 납품받아 보면 모종이 시집갈 시기를 놓친 상태를 더러 본다. 뿌리가 밑바닥에 닿아 시집 빨리 보내 달라고 뱅글뱅글 몇 바퀴 돌아져 있다. 그런 모종을 심으면 다시 새 뿌리를 내어 자리를 잡기 때문에 생육이 늦어져 계획된 출하기를 놓친다. 국내 육묘회사의 변화를 기대하며 페이스북에 네덜란드 모종 사진을 올렸다. 사진을 올리자마자 전국 리시안서스 재배 농장주들이 수입 주선을 부탁한다. 육묘회사 대표에게 수입할 테니 보내 주겠느냐고 했더니 튤립꽃 같이 웃으며 눈빛이 달라진다.
이듬해 함께 다녀온 리시안서스 재배 농장주와 주선해 국내 몇 농가에 모종을 수입해서 심었다. 국내보다 낮은 가격으로 멀리 시집 온 모종은 멀미도 하지 않고 포장에 잘 적응하여 활착도 빠르고 생육이 좋았다. 기대했던 대로 수입 모종은 죽는 포기 없이 자람이 양호해서 많은 꽃대가 빨리 올라와 수확량이 많고 품질이 좋았다. 경매시장에서 최고가를 받아 한 농가는 소득이 평년보다 1.5배는 늘었다고 했다. 다음 해는 수입 모종 신청이 첫해보다 3배가 늘어나자, 국내 육묘회사도 긴장하며 좋은 모종 만들기에 힘을 쏟았다. 이제 국내 모종 상태도 많이 개선되어 내가 원했던 결과물을 얻은 것 같아 기쁘다. 이번에 만난 농가도 내가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보고 모종을 수입해서 썼단다. 고맙다는 인사를 과하게 한다. 예부터 모종 농사가 반농사라는 말이 있다. 네덜란드 방문이 농가에 직접 도움이 되어 작은 보람으로 남는다.
신노우〈수필가·시인·대구문인협회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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