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영남일보와의 인터뷰 통해 한국에서의 삶과 가치관 등 전해

두봉 주교가 2019년 영남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영남일보DB
한국에서 70년 넘게 사목 활동을 한 프랑스 출신 두봉 레나도(프랑스명 르레 뒤퐁) 주교가 10일 선종했다. 향년 96세.
두봉 주교는 이달 6일 뇌경색으로 안동병원에서 긴급 시술을 받은 후 치료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봉 주교는 1929년 프랑스의 가톨릭 신자 가정에서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21세에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했다. 이후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과 동대학원에서 수학하고 1953년 6월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1954년 12월 한국에 파견돼 대전 대흥동천주교회에서 10년간 보좌로 사목했으며 대전교구 학생회 지도신부, 가톨릭 노동청년회 지도신부, 대전교구청 상서국장 등을 지냈다.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로부터 주교 서품을 받고 초대 안동교구장으로 취임해 약 21년간 교구를 이끌다 1990년 12월 퇴임했다.
두봉 주교는 '가난한 교회'를 내걸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에 힘썼다.
그가 안동교구장으로 재임하던 1973년 경북 영주에 한센병 환자를 위한 다미안 의원이 개원했고 1978년 12월에는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가 창립했다.
두봉 주교는 농민의 권익 보호도 중시했는데 1978년 발생한 이른바 '오원춘 사건'이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두봉 주교는 영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천주교 안동교구 초대 교구장으로 있을 때 정부로부터 추방명령을 받았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안동의 농민이자 가톨릭신자인 오원춘씨가 납치, 고문받은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과 관련 농민 인권을 문제삼으며 정부에 저항했다. 결국 강제추방명령까지 받았다"라며 “결국 교황청에서 두봉 주교를 추방하면 안동교구장 후임을 임명하지 않고 공석으로 두겠다고 지지해줘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해당 인터뷰에서 두봉 주교는 “전쟁 후 황폐해진 한국에 내 삶을 바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행복하게 살려면 남에게 행복을 먼저 안겨줘야 한다"라며 “가정, 직장에서 먼저 베풀어 상대방이 행복해지면 나도 자연스럽게 행복해진다. 행복을 스스로 체험한 사람이 더 베풀고, 나아가 자신의 행복을 키워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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