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상주시 사벌국면의 낮고 완만한 구릉지에 배꽃이 만발해 있다. 사벌국면과 공검·낙동면 등은 상주시의 대표적인 배 생산지다. 이맘 때면 배 과수원마다 꽃이 활짝 펴 장관을 이룬다. 한 때는 이곳에서 배꽃축제를 열기도 했다.
사과·모과·명자와 함께 장미과에 속한 배나무는 예쁜 꽃을 피우고 탐스런 열매를 맺는 특징이 있다. 배 꽃은 하얀색 꽃잎이 5장이며 그 중심에 암술이 모여 있고 암술 주변에 분홍색 머리를 한 수술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다. 분홍색 머리는 꽃 가루를 만들어 담고 있는 꽃밥(anther)으로, 이것이 익어서 터지면 벌·나비가 꽃가루를 가운데에 있는 암술머리(柱頭)로 옮겨서 수분이 이뤄진다.
이처럼 배꽃은 벌·나비 등 곤충에 의해 수분이 되는 충매화지만 실상 배재배 현장에서는 매개충에 의한 수분율이 낮아 인공수분을 위주로 한다. 배꽃이 활짝 피어 있는 며칠 동안에 붓으로 꽃마다 일일이 인공수분을 해줘야 한다. 이 때문에 지금 시기가 배재배 농민들에게는 가장 바쁜 때다.
그러나 올해는 농민들이 손을 놓고 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배꽃이 대부분 불임의 꽃이기 때문이다. 꽃을 가까이서 들여다 보면 암술이 시커멓게 녹아 있고, 수술마저 흔적이 없다. 지난달 29·30일의 갑작스런 저온현상으로 동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런 꽃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배재배 농민들은 3년 연속 이상 기후로 인한 피해를 보고 있다. 재작년에는 냉해로, 지난해에는 역대급 폭염으로 배농사를 망쳤다. 연거푸 세 번의 재난을 당한 농민들은 헤어날 길이 없어 실의에 빠져 있다. 더욱이 올해의 동해는 재작년의 냉해나 지난해의 폭염피해보다 훨씬 심각하다.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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