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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대구분지 위 깃든 천년의 숨결

2025-04-16
[문화산책]  대구분지 위 깃든 천년의 숨결
이정진 <법무법인 세영 변호사>
대구는 북쪽의 팔공산맥과 남쪽의 비슬산맥으로 둘러싸인 대표적인 분지지형이다. 이 때문에 공기의 흐름이 정체되기 쉬워 여름엔 유독 더위가 심하고, 비구름이 산을 넘지 못해 강수량은 적은 편이다. 일기예보와 달리 비가 오지 않는 날도 많다. 그러나 이 지형은 황사를 막아주는 천연 방패이기도 하다.

이 분지지형을 형성한 산에는 천년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팔공산(八公山)은 태백산맥의 한 줄기로 대구 동구와 군위군, 경산시와 영천시 그리고 칠곡군에 걸쳐 있는 제23호 국립공원이다. 원래는 '공산(公山)'으로 불렸지만, 통일신라 말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 전투를 벌였다가 신숭겸 등 여덟 명의 장군을 잃고 패배한 뒤, 그들을 기리며 '팔공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묘동에는 신숭겸장군유적지가 있고, 유적지 뒤 왕산과 동쪽의 '왕건길'이 있다. 왕건은 공산전투에서 패배한 후 이 길을 따라 동화사를 거쳐 '안심'에 이르렀다고 한다. 왕건이 이곳에 이르러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다고 '안심(安心)'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지명 이야기도 흥미롭다. 현재 이 길은 많은 사람들에게 트레킹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앞산에도 왕건의 흔적이 있다. 앞산 전망대로 가는 길목에는 안일사(安逸寺)라는 절이 있고 그 위 500m 지점에는 왕건이 후백제 병사들의 추적을 피해 몸을 숨겼다는 '왕굴'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왕건을 추적하던 병사들이 굴 앞에 거미줄이 쳐져 있는 것을 보고 사람이 없는 줄 알고 지나쳤다고 한다. 그래서 절 이름도 '편안히 머문 절'이라는 뜻의 안일사로 지어졌다고 한다.

큰골로 올라가는 길에는 은적사(隱跡寺)라는 절이 있다. 왕위에 오른 왕건은 자신이 은신했던 이 곳에 고승 영조대사를 통해 절을 세우고 숨을 은(隱)자, 자취 적(跡)자를 써 이름을 지었다고 전한다.

천년 전 일이니 왕건의 정확한 도주 경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왕건은 이 패배에서 물러나지 않고 다시 힘을 길러 각지의 호족들의 마음을 얻는 정치력을 발휘하였고 마침내 견훤을 물리치고 고려를 건국하였다.

이제 등산하기 좋은 계절이 왔다. 대구의 등산길, 트레킹길에는 왕건의 흔적이 남아 있다. 걷는 길 위에 깃든 이야기 하나하나가 천년 전 역사 속 인물들의 호흡처럼 다가온다. 대구 분지를 이루는 팔공산과 앞산을 걸으면서 탁 트인 전망과 맑은 공기를 만끽하고, 역사의 숨결도 함께 느껴보는 건 어떨까.


이정진 <법무법인 세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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