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재난 트라우마를 안고
고향 지키는 우직한 사람들
하나밖에 모르는 그 마음이
더 멋진 한국을 만들 거라고
한번 꽉 껴안아 드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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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
잠시 한국에 다니러 와 있는 4월, 산불 피해를 입은 지역의 주민들을 인터뷰한 TV 프로그램에서 비슷한 느낌의 사연들을 접했다. 나는 경북 영주에서 아주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명절이면 외가가 있는 의성과 그곳에서 버스로 더 가야하는 친가에 다니러 갈 때 지나쳤던 기차역 이름들을 다시 보니 반가움과 묘한 연결감을 느꼈다. 청송 달기 약수터에서 식당을 운영하셨다는 노부부의 사연이 특히 마음에 남는다. 화재 후 서울 아들이 와 있으라고 했는데 손주들은 학교에, 아들과 며느리는 직장에 출근하고 빈 집에 덩그러니 있는 게 힘들어 잿더미가 되어버린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나이 드신 어머니. "(군에서) 집만 다시 지어 주면 살지요, 왜 못 살아요" 하시던 그 순수한 믿음이 강한 힘으로 다가왔다. 마음에 슬픔이 있는 건 아닌데 타버린 집더미에 들어서면 그냥 눈물이 난다는 어느 어르신의 말씀에서는, 사소한 일상의 스트레스에도 심리치료의 도움을 요청하는데 익숙한 요즘 세대와 달리, 마음의 상처란 개념이 익숙지 않은 세대의 트라우마가 읽혀 안타까웠다. 다행히 한밤중이 아닌 낮에 불이 나 그래도 죽은 사람이 없다는 어느 주민의 말에서는, 우리 아빠도 밤중에 아파트에 불이 난다면 홀로 대피하지 못 하실텐데 싶어 "정말 다행이에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나이가 70인데, 여기서 나서 여기서 크고 그것밖에 몰라요"라시던 나이 드신 아버지. 그렇게 그것 하나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그들의 우직하고 순수한 마음이 고향을 지킨다. 그 고향들이 모여 지역이 되고 나라가 되니 그들이야말로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이다. 여야를 떠나 기득권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을 지키겠다고 그들보다 훨씬 힘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내팽개치고 거리에 나가 있는 2025년 봄의 한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란, 이런 분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진정 지켜야 할 사람들은 누구일까?
산불 피해지역 주민들께는, 당신들의 하나밖에 모르는 그 마음이, 돈이면 다 될 것 같은 요즘 세상에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정말 귀한 거라고, 그 주름지신 손 한번 꼭 잡아 드리고, 따뜻한 가슴으로 한번 꽉 껴안아 드리고 싶다. 캐나다 원주민 의식에 스머징이라고 약초를 태우는 의식이 있는데 불의 기운으로 나쁜 기운을 정화한다는 의미이다. 날벼락같이 슬프고 억장이 무너질 재난이지만, 그렇게 나쁜 것도 함께 다 타버렸을 그 자리에서, 당신들의 그 마음이 새로운 고향을, 새로운 경북을, 새로운 한국을 더 멋지게 만들어 낼 거라고.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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