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과 체화된 인력 융합
진정한 기업의 생존 경쟁력
기업은 축적의 시간 되짚고
기술금융은 가치를 연결해
성장 지원하는 치밀함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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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현 기술보증기금 대경본부장 |
답은 바로 '축적의 시간'에 있다. 살아남은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기술과 인력, 프로세스를 빠짐없이 기록하고 축적해왔다. 현장기술은 노동자의 손끝에 체화되고, 기술개발과 사업화 프로세스가 CEO의 뇌에 새겨져 DNA로 자리 잡을 때 기업은 생존한다. 바로 이런 '축적의 시간'이 기업의 진정한 경쟁력이다.
기술보증기금은 이런 '축적의 가치'를 금융으로 연결한다. 기술을 정확하게 평가해 무형자산에 가치를 부여하고 자금지원으로 이어주는 것이 기술금융의 핵심이다. 최근 기술보증기금 대구경북본부는 올해 신입직원들과 함께 지역 뿌리산업 현장을 찾았다. 이 기업은 40여 년간 축적한 기술로 스마트폰 카메라 모듈 표면처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섰다.
이 성과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환경 규제 등으로 외면받던 금속가공 뿌리기술을 세계적 기술로 끌어올리기까지는 CEO의 뚝심 있는 투자와 수십 년 간 축적된 위기극복 과정이 녹아있다. 기술보증기금은 그 노력에 금융을 더했고, 신입직원들은 '기술이 어떻게 시간 속에서 강해지는가'를 직접 체험하며 기술금융의 무게를 느꼈다.
뿌리산업은 제조업의 기초체력이다. 자동차, 반도체, 2차전지 등 첨단산업도 결국 뿌리산업의 토대 위에 세워진다. 주조, 열처리, 표면처리 등 뿌리기술은 거의 모든 제품에 필요하다. 그러나 낮은 부가가치와 열악한 환경 탓에 청년들이 외면하는 산업이 되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뿌리기업 80% 이상이 50인 미만 영세업체이다. 종사자의 평균 연령도 50세를 넘고 스마트팩토리 도입률도 15% 정도에 불과하다. 기술고도화를 위한 금융과 지원정책이 절실한 이유다. 일부에서는 뿌리산업 대신 첨단산업 육성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독일과 일본은 뿌리기술과 첨단기술을 융합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보존'이 아니라 '혁신'을 통해 진화하는 뿌리산업 모델이 필요하다.
지금은 위기의 시대다. 기업이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가장 잘하는 기술에 '축적의 시간'을 더하고, 디지털 전환과 친환경전략을 접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축적된 기술, 체화된 인력, 현장의 집념이 만나 융합될 때 새롭고 강한 경쟁력이 된다. 그리고 그 곁에는 기술금융이 있어야 한다. 기술금융에는 돈이 되고 성장가능 한 기술을 지원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그러나 외면받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뿌리산업을 다지는 일, 기업의 '축적의 시간'을 발굴하여 눈앞의 성과가 아니라 핵심역량으로 키우는 것이 기술금융의 시작이자 끝이다.
'춘래불사춘'이라 하나, 봄은 왔다. 봄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기온이 아니라 준비다. 기업은 '축적의 시간'을 돌아보고, 기술금융은 기업의 가치를 다른 눈으로 보고 아픈 곳을 지원하는 치밀함이 필요한 때다. 가장 잘하는 기술을 꺼내 과감히 기술금융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위기일수록 가장 잘하는 것이 기업의 미래를 결정한다.
김세현 기술보증기금 대경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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