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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 시인 |
나는 쏟아지는 빗속에 갇힌 학교에 갇혀
비를 바라만 보았다
뛰거나 걷거나 뒤서거나 앞서거나
누군가가 지나간 자리 위로는
어김없이 웅덩이가 하나씩 생겨났다
조그만 웅덩이 안에서는 물결이
잠깐 동안 일렁이다 사라졌다
나는 빗속에 갇힌 운동장을 바라보다가
운동장에 갇힌 웅덩이를 바라보았다
물결치는 웅덩이들 사이로
익숙한 발자국 하나가 걸어가고 있었다
누나였다
누나도 멀찍이서 학교에 갇힌 나를 보았는지
누나가 만든 물결은 머뭇거리다가
느리게 사라졌다
임경섭 '장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감옥이 있다. 쏟아지는 감옥이 있다. 우리는 거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느리게 고개를 돌리고 거기 조금씩 젖어가는 학교를, 운동장을, 웅덩이를 보는 것이다. 누군가 웅덩이를 남기고 사라진 곳에 잠깐 동안 일렁이는 물결처럼 보는 것이다. 그때 마음은 몸의 웅덩이를 뛰거나 걷고, 비는 누군가처럼 머뭇거리고, 지나갔던 것이 다시 지나가고, 사라졌던 것이 다시 사라진다. 그때 우리를 에워쌌던 철창은 차가운 비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투명한 시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 그리움은 과거의 지층에서 파낸 부장품이 아니라 현재의 지붕을 고치는 망치가 된다. 노역이 된다. 바라보는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쏟아진다. 생각하는 동안 서로의 수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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