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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르포]“시설은 불편했다”…풍찬노숙 10년, 그들이 길 위에 남은 이유

2025-04-22

대구지역 노숙인 보호시설 여유 있어도 절반 가까이 거리생활
현재 거리생활 노숙인 대부분 10년 이상 ‘장기노숙’
단체생활 반감, 정신적 문제로 시설입소 거부

[Y르포]“시설은 불편했다”…풍찬노숙 10년, 그들이 길 위에 남은 이유

지난 21일 오전 6시쯤 대구도시철도 반월당역에서 한 노숙인이 출근하는 인파 사이로 박스를 깔고 잠을 청하고 있다. 구경모기자

[Y르포]“시설은 불편했다”…풍찬노숙 10년, 그들이 길 위에 남은 이유

지난 20일 오전 5시쯤 대구역 역사 인근에 노숙자들이 쌓아 놓은 박스들이 즐비해 있다. 이곳은 노숙인들이 이불을 깔고 잠을 청하는 곳이다. 구경모기자

지난 20일 오전 5시쯤 대구역 인근. 건물 모퉁이 사이로 겹겹이 쌓인 박스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박스더미 옆에는 물통, 가방, 이불 등 온갖 잡동사니들이 한가득이었다. 이 곳에서 10여년간 노숙인으로 산 A(60)씨 보금자리다. 스스로 '거리의 삶'을 택한 A씨에게 '봄철'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혹서기·혹한기 같은 극한기후땐 바깥 생활은 엄두도 못 낸다. 이날 오전 6시가 되자 A씨는 박스들을 걷어 내고 시민들이 오가는 거리로 나섰다. 아침은 머리맡에 놓인 소주 1병. 아침 출근길, 역사 곳곳에 사람들이 몰리자 소주병을 내려놓고 대합실로 이동했다. 역 대합실은 야심한 밤이 올 때까지 그의 안방이 됐다.

A씨는 “낮엔 이곳에 있다가 밤이 되면 밖에 모아둔 박스들 틈에서 잠을 자다"며 “나 말고도 주변에 노숙인들이 많다. 누구 한 명이 먹을 걸 갖고 오면 나눠 먹는다. 나라고 여기 있고 싶어서 있겠냐"라고 하소연했다.

다음 날 오전 6시쯤 대구도시철도 반월당역. 남루한 차림의 노숙인 B씨가 인파 사이에서 박스를 깔고 잠자고 있었다. 몇 달 전 구미에서 노숙 생활을 하다 대구로 원정을 왔단다. 끼니해결이 제일 힘들다고 했다. 당뇨까지 앓고 있어 몸도 성하지 않았다. 그래도 역사 생활을 청산하지 않았다. 그나마 이 곳이 잠자리를 해결하고 쓸만한 물건을 찾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여서다.

B씨는 “개찰구 계단 앞에 노숙인 10여 명이 항상 있어 어쩔 수 없이 역사 내 맨바닥에서 생활한다"며 “사업실패한 후 그냥 여기가 내 집이거니 생각하고 지낸다. 가끔 공무원들이 안부를 묻곤 하지만 실제 도움을 받기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잦은 음주에 길거리 행패 등 불안정한 생활환경 탓에 행여 행인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서다.

인근에서 만난 시민 양모(49)씨는 “ 지하철역 등에서 밤늦게 노숙인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년 애잔한 마음이 들다가도 한편으론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 온다"고 했다. 최모(여·59·대구 북구)씨도 “집 근처 야외 체육시설에 노숙인이 머무는데 시설을 이용하기가 꺼려진다. 곧 여름철이 되면 야외활동이 많은데 밤 중에 행여 변이라도 당할까 걱정된다"고 했다.

노숙인을 위한 주거시설이 일부 마련돼 있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시설입소를 원치않는 분위기다. 최근엔 경북지역 노숙인들까지 지하철 역이 잘 갖춰진 대구로 오는 경우도 많은 상황이다. 통계엔 잡히지 않지만, 지역을 수시로 옮겨 다니는 이른바 '노마드 노숙인'들도 늘고 있다고 대구시 노숙인종합지원센터 관계자는 귀띔했다.

지난해말 기준 대구시가 파악한 지역 내 노숙인은 총 167명. 이중 노숙인 지원시설인 자활센터·일시보호센터에 입소한 인원은 86명. 전체 노숙인 중 절반가량(81명)이 여전히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노숙인들이 각종 지원시설 입소를 거부하는 일은 지역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로 인식된다. 장기간 노숙 생활을 한 탓에 단체생활에 대한 불편함, 정신적 문제 등의 이유로 시설 입소를 거부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대구시 복지정책과 관계자는 “현재 거리 노숙인 대부분은 10년 이상 '장기노숙인'들이다. 대부분이 알코올 중독, 폐소공포증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며 “강제로 이동시킬 수도 없어 큰일이다. 여름철 폭염 대책으로 7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모텔 단기 거주 지원책까지 고려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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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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