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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진 <법무법인 세영 변호사> |
장가계의 십리화랑이나 원가계 등지에는 기암괴석들이 가득 펼쳐져 있다. 석회암 지형이 오랜 세월에 걸쳐 침식되며 빚어낸 것들이다. 깎아지른 절벽과 솟구친 바위들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현실을 떠나 다른 세상에 들어선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이런 비현실적인 풍경은 영화 아바타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이 거대한 자연은 매년 1천만명에 이르는 관광객을 끌어모은다. 매년 30만명의 한국 관광객들도 이곳을 방문하여 거대한 자연경관에 감탄사를 쏟아낸다.
우리 주변에도 산과 숲이 있다.
우리는 푸르른 숲길을 걷고, 산 능선을 걸으며 고요함을 즐기고, 전망대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보며 머릿속 복잡함을 내려놓는다. 산은 거창한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 우리 곁에 소중한 쉼터가 되어준다.
하지만 요즘 들어 산불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경북 의성, 안동, 청송, 영양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봉화와 의성 일대에 번진 산불 피해 면적은 서울 여의도 면적의 약 156배에 달했다. 이 끔찍한 산불은 청송의 만세루, 의성의 고운사 같은 소중한 문화재를 잿더미로 만들었고, 주민들에게서는 삶의 터전을 빼앗았다.
그리고 겨우 한 달여가 지난 지금, 지난 28일 대구 북구 함지산에서도 다시 화재가 발생했다. 강풍을 타고 불길은 거세게 번졌고, 29일 새벽까지도 진화되지 않은 채 타오르고 있었다. 산불이 주택가로 확산되면서 조야동, 서변동, 구암동 등지에서 약 2천200명의 주민이 긴급 대피해야 했다. 밤새 이어진 대피 소식은 듣는 이의 가슴마저 타들어가게 했다.
우리의 산들은 장가계의 십리화랑이나 천문산처럼 장대한 관광명소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이 산들은 인근 주민들에게 소박한 녹음을 내어주고, 마을에 바람막이를 세워주며,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다. 그리 높지 않은 산자락마다 터를 닦아온 세월이 있고, 그 곁에는 문화유산들이 조용히 자리를 지켜왔다. 그래서 이런 산에 화재가 발생하고 삶의 터전이 위협받는 사실은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다. 단지 몇 그루의 나무가 탄 것이 아니라, 그곳에 깃든 사람들의 삶의 기억이, 앞으로 살아갈 희망의 터전이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이다. 화재가 신속히 진압되고 주민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터전을 다시 되찾길 소망한다.
이정진 <법무법인 세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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