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구 동변중학교 주민 대피소
강풍에 건조한 날씨 겹쳐 잡혔던 불길 되살아나
최대 수용인원 훌쩍 넘겨…다른 대피소 가기도
30일 오후 대구 북구 동변중학교 강당. 함지산 산불이 재발화 후 확산하면서 일대 주민들은 하루 만에 다시 대피소로 돌아왔다. 구경모 기자
30일 오후 8시쯤 대구 북구 동변중학교 강당. 이날 대구 북구 함지산 산불이 재발화하면서 대피명령이 해제된 지 하루만에 이곳은 다시 주민들로 가득 찼다. 이날 오후 서변동 주민 3천400명을 대상으로 동변중학교 등 지정된 대피소로 이동해 달라는 긴급 대피명령이 떨어진 것. 해가 지기 전부터 하나둘씩 모여든 주민들은 어느새 최대 수용 인원인 150명을 훌쩍 넘겼다. 뒤늦게 도착한 주민들은 내부로 들어가지 못한 채 다른 대피소로 이동하는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민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산불이 다시 번지면서 하루 만에 같은 곳에서 밤을 지새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눈치였다.
북구 서변동 주민 조순임(80)씨는 "오후 3시부터 집까지 연기가 들어오기 시작해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밖으로 급히 뛰어나왔다"며 "체감적으론 어제보다 상황이 더 심각한 것 같다.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다. 하루만에 다시 대피소 생활을 하려니 기가 찰 노릇이다"고 혀를 끌끌 찼다.
두 번째 대피령이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대피소 생활'을 버거워했다. 서변동에서 왔다는 김명기(50)씨는 "공무원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집에서 나와 무작정 대피소로 향했다"며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텐트를 같이 쓰고 있어 서로 많이 불편해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대구시 재난안전실을 통해 파악한 결과, 함지산 산불의 큰 불길은 29일 오전에 잡혔다. 이에 긴급 대피령이 해제됐다.
하지만 이날(30일) 오후 2시 10분쯤 잔불정리 중이던 함지산 8부 능선 인근에서 강풍과 건조한 날씨로 불씨가 다시 살아났다. 진화 인력 접근이 어려웠던 곳에 남아 있는 불씨가 바람을 타고 이른바 '수관화(나무 꼭대기로 타 들어가는 불)'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50분 뷔 재발화된 불길이 연경동과 서변동 주택가 방향으로 빠르게 확산될 기미를 보이자, 대구 북구청은 주민들에게 2차 대피령을 내렸다.
30일 오후 대구 북구 연경초등학교 강당에 마련된 대피소. 구경모 기자
다시 대피소를 관리하게 된 북구청 공무원들과 자원봉사자들도 당황했다. 자원봉사자 김경희(60)씨는 "어제 아침 대피소에 있던 구호물품과 짐들을 싹 다 정리했는데, 다시 그대로 챙겨와서 대피소를 꾸렸다"며 "분명히 주불이 진화됐다고 들었는데 지금 이 상황이 무척 당혹스럽다. 다른 봉사원들도 모두 경황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관할 북구청 구호담당 직원은 "오후 3시쯤 대피령이 떨어지고 다시 텐트를 쳐야 했다"며 "대피소를 다시 꾸리다 보니 직원들도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의 다른 대피소인 연경초등학교도 상황은 비슷했다. 취재진이 이날 밤 10시쯤 가본 결과, 이곳에 모인 주민들은 모두 86명. 텐트 밖에서 구호품을 기다리던 주민 채덕희(72)씨는 "고령의 노모를 모시고 왔다. 그저께도 가족 모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는데 오늘도 편히 잘 수는 없을 것 같다"며 "다들 고생이 많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산불을 확실히 진화한 후에 대피령을 해제했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고 했다.
구경모(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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