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남색과 흰색 등이 교차된 가로 줄무늬 티셔츠나 세로 줄무늬의 셔츠·정장, 또는 알록달록한 색상의 줄무늬 양말 중 한 가지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현대 패션에서 줄무늬(스트라이프·stripes)는 여름 패션에서 시원한 느낌의 디자인으로 많이 제시되고, 그 굵기에 따라 과감하거나 현대적, 세련된 이미지를 준다.

매춘을 선고받은 세 여성이 성 니콜라스에 의해 구출된 사건을 담은 그림. 파스투로와 미셸이 그린 1340년대 이탈리아 북부의 벽화. <출처: wordpress>
단순한 직선들로 이루어진 줄무늬는 패션의 역사에서 상반된 상징성의 역할을 해왔다. 직조 과정에서 실의 색을 번갈아 달리하여 생긴 줄무늬는 직물에 중간중간 배열되는 다른 무늬들보다 제작하기 쉬웠을 것이지만 중세 시대로 거슬러 가면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중세 서구권에서는 두 가지 색의 줄무늬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다. 무지 원단에 비해 사람들이 쉽게 식별할 수 있어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사람들의 옷에 사용됐다. '악마의 옷: 스트라이프의 역사'라는 책에서도 언급되어 있듯이 중세시대 줄무늬는 악마, 사형수, 매춘부, 광대, 사형집행인, 한센인, 이단자 등 부정적으로 인식된 사람들에 대한 표식이었다. 주로 단색의 직물로 만들어진 옷들 사이에 시각적으로 뚜렷이 구분되는 줄무늬는 나 혹은 우리와 거슬려 보이는 '그들' 사이의 경계선을 의미하는 시각적 코드였다.
1300년대 초 프랑스 한 지역에서는 지역 성직자이기도 한 구두장이 줄무늬 옷을 입은 것이 적발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중세시대 줄무늬 옷은 위험한 의미를 지닌 무늬였다. 이후 교회중심 문화가 쇠퇴하고 인간을 중시하는 인본주의가 일어난 르네상스 시대에 새로운 상징적 용도로 등장했다. 줄무늬의 시각적 대비는 여전히 차이를 의미했지만 부정적 낙인에서 점차 양식화됐다. 특히 1600년대 카니발이나 연극적 표현에서 줄무늬 무대복에서 화려한 볼거리와 장난스러운 재미를 연출하는 옷으로 귀족이 아닌 사회계층의 옷에 사용되는 것이 어느 정도 허가돼 조금씩 그 수용 범위가 넓어지게 됐다. 나아가 오스만 제국이나 인도 등에서 수입된 줄무늬 실크나 면 직물은 귀족들의 옷으로 만들어져 부와 이국적 취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700년대 18세기 이후 줄무늬의 사용에는 극적인 변화가 있었다. 한때 주변부로 여겨지고 시각적 혼란을 야기했던 줄무늬는 합리성, 현대성, 나아가 귀족적인 여가를 상징하는 요소로 발전하게 됐다. 18세기 유럽 전역에 발발한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통해 사회를 개혁하고 발전시키려는 움직임인 계몽주의의 유행에서 줄무늬는 질서와 합리적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한 방식이었다. 논리적, 구조적, 대칭적 가치를 추구하는 계몽주의의 사회에서 균일한 간격과 규칙적으로 배열된 줄무늬는 특히 군복 등 제복을 통해 기능성과 통제력을 상징하기도 했다.

마리니에르를 입은 파블로 피카소와 그의 작품. <출처: ateliermariniere>
1800년대 중반 프랑스 해군 공식 제복으로 도입된 줄무늬 티셔츠인 마리니에르(Marinière)는 가로로 파란색과 흰색 줄무늬의 상의이다. 선원들이 물에 빠졌을 때 보다 더 잘 보이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티셔츠는 20세기 초반 파블로 피카소를 비롯한 예술가와 지식인들에게도 받아들여져 현재 하이패션(high fashion)으로까지 진화됐다. 줄무늬 셔츠가 여성 실용복으로 활용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중 코코 샤넬이 해변에서 휴가 중 지역 선원들의 제목에서 영감받아 저지 원단의 줄무늬 티셔츠를 여성 패션으로 제안한 것에서부터였다. 이는 당시 불편한 여성 패션에서 그들의 신체를 해방하고 우아한 여성미와 세련된 실용성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패션은 현대 여름철 대표적인 레저룩(leisure look)에 주요 요소로 자리잡게 됐다.

분해되고 해체된 줄무늬 패션. 2013년 꼼데가르송 작품이다. <출처: nowfashion copy>
20세기 초 줄무늬 패션은 당시 합리성과 현대성을 추구하는 현대미술 운동인 모더니즘 디자인 경향과 더욱 맞아떨어져 기하학과 반복성, 질서와 산업적 미학이 패션에 수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반항의 상징적 배우 제임스 딘, 우아함과 캐주얼한 세련미를 갖춘 현대 여성의 모습을 이끈 오드리 헵번, 팝아트의 대중화를 이끈 앤디 워홀, 극적인 패션의 창조자인 장 폴 고티에 등 영화배우, 예술가, 디자이너 등 시대의 아이콘인 인물들이 줄무늬 상의를 입은 모습이 상징적 의미로 소개되면서 줄무늬의 대중적 영향력은 더욱 부상하게 됐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를 지나며 단정하고 정리된 줄무늬는 반항적 펑크 패션의 대표 디자이너인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비대칭적이고 반형태성을 추구하는 레이 가와쿠보 등의 손을 거치며 깨지고 비틀어진 다차원적 공간으로 확장되면서 절제미가 해체됐다. 배제에서 유희성, 가시성, 질서를 거친 줄무늬는 이제 전통적 현대미를 유지하면서도 파괴적 재창조를 이루어 이질적 문화의 융합을 상징하는 새로운 코드로 변화하고 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