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을사년 첫날인 1월1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 사주 가게 앞에서 시민들이 신년운세를 보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영남일보 DB>

학생들이 대구 중구 동성로의 사주 타로 가게 앞 신년 운세를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영남일보 DB>
사주 보러 가자. 최근 친구 하나가 제안했다. 바쁘다는 말을 빙자해 완곡한 거절을 표했다. 사주 같은 운명 예정설을 믿지 않게 된 계기가 있다. 철학관에 간 적이 있다.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평소 점술을 믿진 않았지만 마침 내 앞날이 궁금했던 참이었다. 나이 든 선생이 앉아 있었다. 선생은 생년월일을 물었다. 이를 종이에 받아적고는 알 수 없는 한자들을 들여다봤다. 안경을 벗고 얼굴을 매만지더니 내가 "공직에서 일할 팔자"라고 했다.
시간이 지났다. 삶은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언론인이 됐다. 공직에서 일할 거란 선생의 예언은 빗나갔다. 철저한 경험론자는 아니지만 나는 이 점술이 미신이라 생각한다. 태어난 생년월일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모든 일이 과학적으로만 설명되지 않다는 걸 알지만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물론 오만한 생각일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의아하다. 운세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마주친다. 챗GPT에게 사주를 봐달라고 하고, 운세를 볼 때 원서를 낼 기업 명단까지 추려가는 경우도 있단다. 이들 대부분은 점술을 "맹신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꽤 진지해 보인다. 모순적이면서도 흥미롭다. 그 이야기를 조금 더 가까이서 들여다봤다. 14면에서 계속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점술 열풍'이 불고 있다. 타로, 사주 등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놀이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사진은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대구 시내 한 타로·사주집 벽에 붙어 있는 사주, 궁합, 1년 운세 가격표. <영남일보 DB>
#1 "올해 가을쯤 이직운이 강하게 들어왔어요. 옮기는 게 좋겠습니다." 직장인 김모(33)씨는 얼마 전 타로 점술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적성과 맞지 않는 직업에 회의를 느끼던 찰나였고, 지인의 추천으로 난생처음 타로 상담을 받아봤다. 김씨는 "불안감이 너무 커지니 미신이라도 기댈 곳이 필요했다"고 털어놨다.
#2 대학생 윤강은(21)씨는 매일 아침 '오늘의 운세'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는 포스텔러, 점신 같은 모바일 운세 앱을 참고한다. 최근엔 챗GPT를 통해 사주를 본다. 윤씨는 "결정을 대신 내려주는 건 아니지만 하루하루 조심해야 할 일을 체크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불확실한 시대에 '점술 열풍'이 불고 있다. 젊은 세대 사이에선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놀이 문화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철학관, 신당 등을 직접 찾을 뿐만 아니라 관련 유튜브 채널을 구독해 점술을 직접 공부하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운세 앱 포스텔러 페이지. 신년운세, 사주, 타로, 별자리 등 운세와 관련한 다양한 콘텐츠를 다룬다. <포스텔러 캡처>

운세 앱 '점신'. 운세풀이, 혈액형 궁합, 별자리 궁합, 연애타로 등을 제공한다. <점신 제공>
지난달 비크닉이 롯데멤버스 자체 리서치 플랫폼 '라임(Lime)'에 의뢰해 만 19~39세 5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약 74%가 운세·사주풀이를 즐긴다고 답했다. 이 중 42.6%는 모바일 운세 플랫폼을, 25.2%는 철학관·사주 카페 등 오프라인을 찾는다고 응답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사주, 타로 및 주술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점술 서비스에 대한 관심은 여성과 저연령층일수록 높았다. 연령대별로는 10대(71.5%), 20대(68.0%), 30대(67.5%), 40대(56.0%), 50대(57.0%), 60대(41.5%) 순으로 나타났으며, 성별로는 남성(51.3%)보다는 여성(69.2%)이 17.9%포인트 더 높았다.
이런 분위기에 운세 관련 앱들도 인기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젊은 세대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 앱 '포스텔러'는 누적 가입자 900만명, 월간 활성 이용자 142만명을 기록했다. 이 중 85%가 2030세대다. 다른 앱 '점신'은 다양한 콘텐츠와 접근성, 편의성을 바탕으로 이용자들의 진입장벽을 낮추며 지난해 누적 다운로드 1천500만회를 기록했다. 매칭 포인트, 미래 배우자 얼굴, 성격·직업 등 운세풀이, 혈액형 궁합, 별자리 궁합, 연애타로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테마별 운세를 제공하며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의 취향에 따른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난해 2월 개봉한 무속 오컬트 영화 '파묘'의 스틸컷. <쇼박스 제공>

지난해 2월 개봉한 무속 오컬트 영화 '파묘'의 스틸컷. <쇼박스 제공>
점술 관련 영상 콘텐츠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초 개봉한 무속 오컬트 영화 '파묘'가 천만 관객을 달성한 데 이어 점술 관련 방송도 잇따르고 있다. 젊은 무속인들의 사랑을 다룬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신들린 연애', 무속신앙을 탐구하는 다큐멘터리 '샤먼: 귀신전' 등 무속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들이 흥행하고 있다.
유튜브 시장도 비슷한 상황이다. 국내 운세 관련 유튜브 채널은 약 4천개다. 타로 카드 해석이나 사주 분석 방법 같은 정보가 다수인데, 최근엔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생년월일을 들고 무당을 찾아가 대신 점을 보는 콘텐츠도 나온다. 화제가 되는 연예인들의 성격을 추측하는 영상도 올라온다.
생성형AI가 널리 쓰이며 점괘에 AI를 활용하는 사례도 나온다.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연구팀은 지난해 12월 AI가 점술을 봐주는 'ShamAln'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이름, 생년월일, 직업 등 개인정보를 입력하면 사주 개념을 반영해 의뢰인의 질문에 답한다. 조명과 음향, 움직이는 장식 등 무당집과 흡사하게 꾸몄다.

최근 '점술 열풍'이 불면서 무속 관련 콘텐츠도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이들이 점술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재미도 있지만 심리적 안정감 때문이 컸다. 취업·연애·진로 등 인생의 큰 선택을 앞둔 상황에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그에 대한 조언을 듣는 과정 자체에서 위안을 얻고 있었다. 롯데멤버스 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운세 콘텐츠를 찾는 이유로는 '단순한 재미를 위해서'(30.1%)와 '신년이라서 호기심에'(30%)가 주요 이유로 꼽혔고, '심리적으로 위안을 받기 위해'(23.6%), '고민거리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22.9%),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서'(21%)도 상당 비율을 차지했다.
취업준비생 이모(24)씨도 취업 기간이 길어지면서 스트레스가 심해져 공채 시즌에 앞서 여러 사주집을 찾았다. 이모씨는 "운이 괜찮다는 시기를 참고해 지원서를 많이 낸 적도 있고, 원서를 낼 회사 명단을 추려간 적도 있다"며 "사주를 보니 불안감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방향성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카이스트 연구팀도 다수의 참여자들이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AI에게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으며 심리적 위안을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스스로 점치는 사람이 되려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타로 해석이나 사주 구조를 독학해 본인의 운세를 직접 보는 식이다. 최근 사주 구조를 공부하고 있다는 윤씨는 "점집에서 해주는 말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라 차라리 내가 구조를 이해하고 직접 판단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때때로 친구들 운세도 봐주는데 혼자 끙끙 앓기보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고민을 해소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 좋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놀이 문화'라고 설명한다. 허창덕 영남대 교수(사회학과)는 "젊은 세대의 경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기성세대보다 크고 자신에게 관심이 많다.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운세를 찾는 것이 '놀이 문화'로 확대된 것"이라면서 "운세는 운명론을 바탕으로 한 점술이기에 이에 과도하게 기대기보단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