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모두 떠나고 해상공원 탈바꿈
동백 자생지에 다양한 식물들 식재
예쁜 조각상과 옥빛 바다 더해 감탄
전망대에 서면 다도해 파노라마 풍경
‘별에서 온 그대’ 촬영지로 주목받기도

장사도 온실과 아름다운 앞바다와 섬. 장사도는 일년내내 꽃이 피고 진다.

근포항에서 바라본 장사도와 빨간 등대. 장사도는 긴 섬의 형상이 누에를 닮아 누에잠(蠶)에 실사(絲)를 써서, 누에섬 '잠사도'라 불렸다.
바다를 여는 바람이 뼛속까지 불어온다. 근포를 떠나 장사도로 가는 뱃길은 바람의 길이었다. 닿을 수 없는 허공에서 방향타를 잡는 바람. 다소 롤링이 있고 그때마다 몸이 틀어지며 속이 울렁거린다. 유람선은 불과 15분 항해해 장사도 선착장에 도착한다. 내리자마자 보이는 장사도 해상공원 까멜리아. '현 위치에서 탐방 시간은 2시간입니다'를 본다. 섬의 첫길은 가팔막 졌다. 중앙광장까지 땀나는 오르막이다.
섬은 사실 뱀하고는 다른 생김이고 환경도 식물의 에덴이다. 섬은 누에를 무척 닮았다. 이에 걸맞게 섬은 실크로드를 연상하는 꿈과 상상 끝머리에 떠 있다. 그러나 길을 걷는 현실은 영 딴판이다. 10만여 그루 동백나무·후박나무·구실잣밤나무와 천연기념물 팔색조·동박새·풍란은 장사도를 명승으로 만들었고 꼭 다녀와야 할 남해의 신기루 같은 섬이 되었다. 한 칸짜리 장사도 옛 분교에 들른다. 손바닥만 한 운동장에서 창문으로 교실 안을 엿본다. 마음 어느 구석에 잠들었던 그리운 것이, 새 숨결로 살아나는 추억. 학교 종이 땡땡 친다.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밝고 경쾌한 풍금 멜로디 그 동요 속 어딘가에서 숱한 무언가가 떠오른다. 특히 강냉이 빵 타러 급식소 가던 남산초등 4학년 오월의 어느 날이 유난히 낮별처럼 정수리에서 반짝인다. 그땐 먹을 게 없어 무던히도 배고팠던 시절이었다.
연이어 빨간 무지개다리를 건넌다. 양 끝은 처지고 가운데가 무지개처럼 휘어진 다리. 선녀들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올 때 타고 왔다고 전해지는 무지개다리. 천국과 지상을 이어주는 이 다리는 '따뜻한 말 한마디'의 촬영장소이기도 했다. 다리 아래에 필름 프로미네이드(film promenade) 장사도 소개가 있다. 장사도 해상공원. 해발 108m, 폭 400m, 길이 1.9㎞ 무인도다. 긴 섬의 형상이 누에를 닮아 누에잠(蠶)에 실사(絲)를 써서, 누에섬 '잠사도'라 불렀고, 누에의 경상도 방언인 '늬비'를 써서 '늬비섬'이라고 옛부터 불리웠다.

식물의 에덴 장사도. 지형지물을 그대로 보존하고 천연자연이 살아있는 친환경 해상공원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섬 이름을 등록할 때 누에잠(蠶)이 어렵다고 길 장(長)을 붙이는 바람에 장사도(長蛇島)가 됐다는 말이 전해진다. 과거에는 14채 민가와 83명의 주민이 살았었고 장사도 분교와 작은 교회가 있었다. 건축물은 수목이 없는 빈 공지에 지었으며, 돌담은 섬의 자연석을 이용하였고, 옛길을 복원하고 지형지물을 그대로 보존하고 천연자연이 살아있는 친환경 해상공원이다. 그리고 달팽이 승리 다도 전망대를 거친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파란 투명색 바다 조망으로 나도 모르게 와우, 와우, 굳, 굳(Good)이 연발로 터져 나온다.
반달을 본뜬 온실에 들어서자, 훅 끼쳐 오는 나무 향기 꽃향기가 가슴까지 스며 아름다운 모닥불로 피어난다. 다양한 식물군과 꽃나무 정말 장관이다. 일년내내 꽃이 피고 지는 온실. 다육 양치 식물관이 있다. 온실은 무가온 즉, 난방을 하지 않는 온실이다. 부근 섬 아기집으로 간다. 예전 주민이 살던 집을 복원해 놓았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 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가물가물한 기억으로 섬집아기를 허밍해 본다. 어릴 적 한때 나를 사로잡았던 이 노래는 아직도 귓전에 맴돌고 있어 어찌할 줄을 모르겠다. 정말 그림자 같은 추억들이다.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우주의 법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모든 것들, 슬픔·연민·사랑이 깜박이는 추억의 네온사인, 모두가 흐르는 시간 속으로 어느덧 사라져 가겠지만. 소멸하므로 아름다움을 남기는 과거의 감정을 추스를 수 없어, 왠지 눈자위가 자욱해진다.

장사도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함부로 애틋하게'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장사도 야외 공연장과 12개 브론즈 두상. 큰 바위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 동백 터널길로 들어선다.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촬영지다. 이 드라마는 400년 전 조선 시대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도민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를 건너뛰는 판타지와 스릴러 요소가 배합되고, 한류 톱스타 천송이와 도민준 두 배우의 섬세한 감정 연기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특히 도민준의 초능력을 이용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와 내면의 외로움과 상처가 있음에도 천송이가 발산하는 인간적인 매력은 신선하고 흥미로웠으며, 많은 여성 시청자들의 공감과 몰입감을 얻었다. 현실의 어려움에도 한 줄기 빛을 보는 듯 희망이 생기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풍성한 사랑 이야기를 이 드라마는 제공했다. 그리고 '함부로 애틋하게' 촬영지인 장사도. 만족할 줄 모르는 내 마음에 감사함을 채워주고 현실을 사랑하게 하는 꿈의 섬. 새소리를 실어 오는 바닷바람이 어머니의 음성, 모음으로 구른다. 섬 한가운데는 큰 바위 얼굴을 떠오르게 하는 12개의 거대 브론즈 두상이 있다. 이전 고구마밭에 조성한 1천석 규모의 야외 공연장이다. 책, 별자리, 쓰레기, 건축물, 성, 종교를 소재로 한 김정명 작가의 작품들이다. 마치 로마 원로원을 닮은 얼굴은 장사도 와는 한참 빗나간 조각품으로 보인다. 나의 미적 감각이 무뎌서 그럴까.

작고 소담한 장사도 개척 교회. 옥미조 선생에 의해 1973년 5월 완공됐다.
이어 섬의 자그마한 교회로 간다. 지붕 아래 십자가가 있다. 이토록 작은 개척 교회는 처음이다. 당시 장사도 분교에 부임하신 옥미조 선생님에 의해 1973년 5월에 건물을 완성하고 첫 입당 예배를 드렸다. 섬에는 14가구 83명이 거주했는데 그 중, 70여 명이 애면글면 교회를 다녔다. 1990년 이후 주민이 하나둘 떠나고 허물어진 교회를 2013년 신축 복원하였다. 당시 사용한 교회 종은 화단 한편에 보관 중이다. 하느님을 섬기는 아동 문학가이자 초등 교사였던 옥미조 선생님. 그의 음성과 교회 종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 18 : 3) 어린아이를 영접함이 나를 영접함이라고 성경을 믿고 가르친 그녀 영혼은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사랑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교회 안 상단에는 역시 십자가가 있었고, 벽에는 예배용 검은 옷이 걸려 있다.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누가 3 : 11) 성경 구절을 다시 마음에 새겨 넣는다.

장사도 누비 하우스와 한려 해상 풍경. 장사도는 곧고 길쭉해 등줄기 전체가 수려한 해상공원을 조망하는 전망대와 다름없다.
누비 하우스 스낵 식당으로 간다. 멍게를 젓갈로 만들어 비비는 멍게 비빔밥과 성게미역국은 바다 내음을 한껏 만끽하는 별미였다. 밥 따로 국 따로 꿀떡꿀떡 넘어간다. 이름은 대구 원조, 장사도식 따로국밥이다. 그 옆 미인도 전망대에 선다. 바다는 먹 오디빛 절경이며, 죽도·미인도·소적도 등 많은 섬이 파노라마 풍경이다. 상록 활엽수들의 빽빽한 원시림이 섬을 덮고 있다. 장사도는 여느 섬과 달라 곧고 길쭉해 등줄기 전체가 수려한 해상공원을 조망하는 전망대와 다름없다. 한 번씩 거센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나에게 밀려와 초록의 환시로 물결친다. 시간은 후딱 지나간다. 벌써 섬 체류 두 시간에 가깝다. 출구 선착장으로 내려간다. 배에 탄다. 기암괴석이 즐비한 해안에 머루빛 파도가 밀려와 하얗게 흩뿌려질 때마다 동백꽃이 서러운 듯 뚝뚝 떨어지는 장사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걷고 바라만 보아도 그 풍경 속으로 스며드는 여행의 머릿돌이 되는 섬. 그 깊은 감동 선이 걸음마다 이어오는데도 불구하고 갈매기의 전송도 없이 배는 훌쩍 선착장을 떠난다.
글=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유판도 여행사진작가
문의 : 장사도 해상공원 (055)633- 0362
주소: 장사도 근포 유람선, 경남 거제시 남부면 근포1길 71
트레킹 코스: 입구 선착장–중앙광장–장사도 분교-무지개다리–온실–섬 아기집–작은 교회–누비 하우스–미인도 전망대–출구 선착장
인근 볼거리: 근포 땅굴, 노자산 케이블카, 유치환 선생 생가, 씨릉섬, 저도, 공곶이, 내도, 학동 해변, 거제 해금강, 바람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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