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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심 변호사가 바라본 세상] 국민이 사랑하는 지휘자를 기대하며

2025-06-17 06:00
김영심 법무법인 율빛 대표변호사

김영심 법무법인 율빛 대표변호사

'여든세 살 나의 장례식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장례식은 엄숙해야 한다고 누가 정했을까요. 오늘만큼은 다릅니다. 당신은 우는 대신 웃어야 합니다. 나의 친구여 나와 오래 동반해준 이여 꽃은 필요 없습니다. 꽃 대신 기억을 들고 오세요. 마지막으로 들었던 나의 목소리를, 내가 좋아했던 대사를, 오래된 이야기와 가벼운 농담을, 우리가 함께 웃었던 순간을 안고 오세요. 이것은 작별이 아니라 쉼이며 끝이 아니라 막간이니까요.'


연극배우 박정자 선생님의 생전 부고장에 적힌 초대 글 중 일부이다. 노배우의 삶과 죽음을 주제로 한 배우 유준상 감독의 영화 '청명과 곡우 사이' 마지막 장면인 장례식 촬영을 위해 지인들에게 보낸 부고(訃告)인 셈이다. 장례식이다 보니 조문객 역의 많은 보조출연자가 필요했는데 그날 조문객은 박정자 선생님의 실제 지인들 150명이 초대되었다.


강릉 동해의 광대한 바닷물이 넘실대며 하얀 물거품을 만들어내던 순포 솔숲해변을 배경으로 촬영된 장례식에는 강부자 선생님을 비롯한 유명 배우, 손진책 연출자를 비롯한 연극 관계자, 전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문화예술 분야의 저명한 인사들이 전부 보조출연자로 참여했다. 주연배우 박정자는 미니어처 상여를 들고 솔숲 바닷가를 북과 꽹과리 장구 장단에 맞추어서 걸었고 150여 명의 친구와 지인들은 배우 박정자가 출연했던 연극, 영화, 작품의 제목이 쓰여 있는 만장을 하나씩 손에 들고 웃고 춤추며 여느 장례식장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위기의 여자' '햄릿' '신의 아그네스'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만다라' 등 배우의 대표작 제목이 쓰인 150개의 깃발을 보면서 나는 박정자 배우가 왜 '살아있는 전설'인지 알게 되었다. 나도 '19 그리고 80'이 쓰인 만장을 높이 쳐들고 웃으며 덩실덩실 춤추는 보조출연자 역할에 충실히 임했다. 여든 평생을 연극 영화에 몸 바친 선생님의 작품들이 쓰인 150개의 만장이 해변에 세워진 채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을 보니 인생의 파노라마가 펼쳐진 듯 배우의 전 인생을 한순간에 보는 듯해서 가슴이 뭉클했다.


이번 6월에 우리 국민이 간절히 기다리던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되었다. 2025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가 내는 불협화음을 들으며 몇 달을 불안과 피로감에 시달렸다. 다들 한 마음으로 빨리 새로운 지휘자가 탄생되기를 기다렸고, 역대급 투표율이 그런 염원을 반영한 것으로 본다. 21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공존과 통합' '성장' '균형발전' '소통과 대화' '평화' 등 국정철학과 비전을 제시했다. 다짐과 맹세를 충실히 지킬 것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우리에게 희망을 선물했다. 취임사를 들으며 나는 최다 득표 당선자답게 더도 덜도 말고 취임사대로만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역대 대통령의 솔깃한 취임사를 한두 번 들었던 게 아니다. 처음은 모두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면서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리 국민은 더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에 속고 싶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국민에게 약속한 희망적인 말들이 이번엔 정말로 잘 지켜지길 바란다. 대배우 '생전 장례식'의 만장 깃발은 아니더라도, 퇴임식 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대통령의 성과가 적힌 깃발을 들고 축하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우리는 더는 실패한 대통령을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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