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주 새마을문고중앙회대구북구지부 회장
"당신은 세상의 무감각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이 질문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살인을 저질렀지만 죄책감이 없고, 도덕이나 감정의 규범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사회는 그의 죄보다 '무감정'한 태도를 더 문제 삼는다. 이 소설은 감정을 잃은 인간과 그로 인한 소외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뫼르소의 모습은 우리의 현실과도 닮아 있다. 반복되는 사건과 사고에 노출되며, 감정은 피로에 젖고 점점 무뎌진다. 누군가의 고통에도 "그럴 줄 알았어"라고 반응하는 일이 익숙해졌고, 아이들조차 웃음이 줄고 질문이 사라진다. 감정의 말문이 막혀가는 시대다.
나는 작은도서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책을 매개로 독서문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짧은 글을 쓰는 순간은 단순한 독서를 넘어 아이들의 마음을 열고 감정을 회복하는 길이 된다. 작지만 분명한 실천이 공동체를 따뜻하게 만든다. 그 실천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 있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그림책을 읽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친구도 속상했나 봐요. 나도 그럴 때 있어요." 짧은 말이었지만,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말이 없던 아이들이 그림책 인물에 빗대어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책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자, 사람을 잇는 다리였다.
그 풍경을 바라보다 문득 '이방인' 속 뫼르소의 무표정한 얼굴이 떠올랐다. 감정을 잃어버린 한 인간과 감정을 배워가는 아이들. 전혀 다른 존재처럼 보이지만, 묘하게 닮아 있었다. 뫼르소가 끝내 표현하지 못한 감정을, 아이들은 책을 통해 조금씩 되찾고 있었다.
"세상의 부조리 속에서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내 대답은 분명하다. 무기력과 무감각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지금 여기서 감정의 숨을 불어넣는 일. 책을 읽고, 마음을 열며,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작은 실천.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인간다움이다.
표현을 잃어가는 시대, 우리는 다시 감정에 길을 내야 한다. 뫼르소의 침묵이 아니라, 목소리를 나누고 반응하는 따뜻한 공동체로 나아가는 것. 그 시작을 오늘도 작은도서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책과 사람 사이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심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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