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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구로에서]낭만 즐기기보다 앞서있는 충동

2025-06-25

심연 수심 낙원의 허실 교차
감성소비가 부른 통제 부재
사전 경고 무시한 안전불감
예지 없는 낙관은 비극 잉태
보수적 안전 대책 수립해야

강승규 사회2팀장

강승규 사회2팀장

SNS에 소개된 한 장의 사진이 위력을 발휘하는 시대다. 이미지는 말보다 빠르고, 충동욕구는 경고보다 강하다. 대구 달성군 가창면 옛 채석장에 생긴 이른바 '비밀 호수'가 그 전형이다. 깊고 선명한 에메랄드 물빛, 캐나다의 원시림을 연상케 하는 수직 절벽은 발길을 절로 향하게 한다. 어떤 이는 '지도에 없는 낙원'이라며 한껏 치켜세운다. 하지만 낙원은 늘 유혹을 동반하고, 그 끝엔 종종 파국이 기다린다. 이곳은 정식 관광지가 아니다. 사유지라서 안전요원도 없다. 수심 29m 깊이 물 가장자리에 발을 디딘 순간 황천길로 갈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철망을 넘고, 심지어 수영까지 한다. 지난 15일 한 50대 남성이 이 곳에서 수영하다 경찰에 발각됐다. 경범죄처벌법 위반이다. 단순한 일탈행위가 아니라 '집단적 무감각'으로 봐야 한다.


유사 사례도 있다. 경기도 포천 '비둘기낭 폭포'는 SNS에서 '비밀 명소'로 알려지며 구름인파가 몰렸다. 결국 출입 통제로 이어졌다. 강원도 양구 '펀치볼' 일대는 DMZ 인근이라는 특수성에도 '감성 풍경' 명소로 알려지면서 안전사고 우려가 제기됐다. 미국 애리조나 '호스슈 벤드(Horseshoe Bend)'는 SNS에서 '죽기 전에 가야 할 절경'으로 소개된 뒤 관광객이 폭증했다. 추락 사고가 이어지자 입장료가 부과되고, 안전 울타리 까지 설치됐다. 낭만의 확산 속도를 안전심리가 빨리 따라가지 못해 생긴 일들이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안일한 판단이 만연되면 집단은 곧잘 그것을 '정상'으로 인식한다. SNS가 이같은 행태를 증폭시킨다. 한 장의 사진이 수천 명의 발길을 이끌고, 충동은 대책보다 앞서 도착한다. 우리는 늘 '안전'을 외치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달성군과 달성경찰서, 토지주는 철망 설치와 구조용 부표 배치, 경고 현수막 게시, 탄력순찰 강화 등 안전 사고 예방에 적극 대응 중이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대응속도가 아니라 '통제의 철학'과 '절제력'이다. 사고는 늘 예고 없이 닥치는 게 아니다. 엄밀히 말해 사고는 이미 수없이 보내진 위험 시그널을 무시해서 생기는 경우가 태반이다. 예방이 사후 조치로 바뀌는 순간 이미 행정은 실패했다고 봐야한다. '사후약방문'은 행정력에 있어 운신의 폭을 좁힌다. 무단 진입에 대한 형사처벌 강화, 드론 비행 금지, 사유지 고지 명문화, 지역 주민과의 협력 감시 체계 마련 등 다층적 대응이 필요하다. 자율에만 기댄다면 안전 의식은 늘 한 발 늦기 마련이다. 법의 엄정성과 행정의 일관성이 동시에 요구된다.


자연을 다루는 자세도 중요하다. 국민은 수많은 참사를 겪고도 잘 기억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수해 복구 현장 출입 중 사고를 당한 인플루언서, 출입 금지 구역에서 사진을 찍다 목숨을 잃은 여행객들의 사례가 그랬다. 망각은 집요하다. '괜찮겠지'라는 안일함은 비극의 문을 활짝 열어 제친다. 지금 필요한 건 낭만의 포장지가 아니라 절제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가까이서 훼손하는 게 아니라, 멀리서 보존하는 것이다.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으면, 다음 뉴스는 분명 비극으로 점철될 것이다. '뻔한 결말'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제도권에서 부단히 움직여야 한다. 안전 앞에서의 보수주의는 두려움이 아니라 예지다. 우리는 과거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다듬어지지 않은 대구의 새 명소를 대하는데 있어 필요한 건 용기 있는 단속과 책임 있는 통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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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규

의료와 달성군을 맡고 있습니다. 정확하고 깊게 전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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