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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소년 우승 황혼 우승

2025-06-26 11:00
토트넘 주장 손흥민이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스페인 빌바오의 산 마메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유로파리그 결승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고 우승한 뒤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토트넘 주장 손흥민이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스페인 빌바오의 산 마메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유로파리그 결승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고 우승한 뒤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0년대 초, 박찬호 선수의 다저스 경기를 즐겨 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이 있다. '숀 그린'. 당시 다저스의 중심타선을 구축했던 그는, 키가 훤칠한 미남이었고, 당대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는 슈퍼스타였으며, 스탠포드에 입학했을 정도로 출장입상(出將入相)의 엘리트이기도 했다. 박찬호 선발 때 홈런을 많이 쳐서 '박찬호 도우미'로도 잘 알려진 그는, 유대인인지라 '욤 키푸르' 때마다 경기 출장을 거부했던 것, 그리고 홈런을 친 뒤에는 항상 자신의 장갑을 벗어서 어린 관중들에게 던져 주던 것 등이 기억에 남아있다.


이 숀 그린은 선수생활을 통틀어 월드시리즈 우승을 딱 한 차례 기록한다. 그런데 그게 참 재미있다. 1993년 당시 메이저리그 최강팀은 놀랍게도 토론토 블루제이스였다. 그리고 당시 그 팀에는 쟁쟁한 슈퍼스타들이 즐비했다. 월드시리즈 끝내기 홈런에 빛나는 조 카터, 당대 최고의 2루수 로베르트 알로마, 타격왕 존 올러루드,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폴 몰리터 등이 그들. 블루제이스는 이들로 구성된 막강한 타선을 앞세워 일찌감치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었고, 확장 로스터 시기에는 마이너리그 어린 유망주들을 콜업하여 빅리그 맛보기를 시켜준다.


그때 마이너리그를 초토화시키고 있던 블루제이스의 대형 유망주 숀 그린이 메이저리그 타석에 최초로 들어선다. 3경기에서 6타수 무안타. 그리고 시즌은 종료되었고, 그 직후 벌어진 포스트시즌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국이 아닌 국가에서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명장면을 연출한다. (직전 해인 1992년에도 블루제이스는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됐었지만 그때는 적진 애틀란타에서 시리즈를 승리했기 때문에 트로피는 미국 땅에서 수상했었다.) 바로 그때 월드시리즈에서 단 한 타석도 들어서지 못했던 우리의 숀 그린은 얼떨결에 우승 반지를 받게 된다. 21살의 어린 나이에 고작 3경기에서 6타수 무안타를 치고는 타이 콥, 테드 윌리엄스, 배리 본즈와 같은 전설들도 못 껴본 월드시리즈 반지를 덜컥 끼게 된 것이다.


위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월드시리즈 우승 경력이라는 건 사실 운구기일(運九技一)에 가깝다. 그렇기에 메이저리그는 원래 명선수들도 우승 경험이 없는 경우가 파다하다. 그러나 유럽축구의 경우는 좀 이야기가 다르다. 리그, FA컵, 리그컵, 챔피언스리그, UEFA컵 등 대회도 많은 데다가 명선수라면 거의 예외 없이 빅클럽에서 뛰기 때문에, 일부러 피해 다닌다고 해도 우승 하나쯤은 무조건 얻어 걸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지독하게도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던 두 선수가 있었다. 바로 토트넘 홋스퍼에서 오랫동안 공격진을 이끌었던 콤비, 해리 케인과 손흥민이 그 주인공이었다.


둘 중 해리 케인이 먼저 그 길고 긴 악몽을 끝냈다. 김민재와 함께 2024~2025시즌 분데스리가의 마이스터샬레를 들어 올린 것이다. 그리고 2024~2025시즌 UEFA컵 결승에서 토트넘의 주장 손흥민 또한 끝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마음 같아서는 손흥민이 딱 10년만 더 EPL에서 뛰어주면 좋겠지만 이제 우리 모두는 안다. 전성기 때 홀로 70m를 드리블하며 번리 수비진을 초토화시켰던 그의 몸도 이제는 점차 세월을 느껴가고 있음을. 그래서 더 짠했다. 어쩌면 손흥민의 라스트댄스일지도 모를, 그 선수 생활 황혼의 첫 트로피.


숀 그린의 경우도 좋고, 손흥민의 경우도 좋다. 어떻게든 우승을 한 게 어디냐. 그러나 만약 두 케이스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거의 100에 99명은 후자의 경우를 고를 것이다. 야구도 축구도 인생도, 역시 흥진비래(興盡悲來)보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가 제 맛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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